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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는 서로 뗄 수 없는 절대적인 결합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서로 떨어지면 다른 것은 고사하고 생명 자체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주님의 관계를 이처럼 생명의 관계로 설명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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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아부, 유치부 어린이들을 위한
요한복음 15장 1절에서 8절의 포도나무 비유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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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료는 제 블로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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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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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jw.org

Date Published: 8/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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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 비유의 의미 (요 15:1-8) – 기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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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godpeople.or.kr

Date Published: 5/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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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hechurch.kr

Date Published: 6/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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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researchheresy.com

Date Published: 9/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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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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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포도 나무 가지 비유

  • Author: 하늘나라기차
  • Views: 조회수 1,75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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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10. 19.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udvIBi5g56U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요 15:1~10)

오늘 저녁에 우리가 함께 나눌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의 복음은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가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믿고 따른 자들과 자신의 관계를 비유로 설명하기를 즐기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요한복음에는 주로 그 관계성을 “나는 ….이다”라는 표현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보면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를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과의 관계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포도나무는 예로부터 팔레스틴에서 가장 귀중한 작목중의 하나로 성경 속에서도 가장 많이 등장하고 있으며 누구든지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나무이며 열매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싶이 포도나무는 나무 자체로서는 별 가치가 없습니다. 나무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땔나무로도 적합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열매인 포도는 우리 삶에 있어서 유익하고, 사람들이 즐겨 먹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삶 가까이에 있는 이 포도나무를 통해서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포도나무이고 우리가 그 가지라는 비유’는 이 관계가 보통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관계는 생명적 관계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둘의 연결은 생의 유지와 풍성을 가리키며, 이둘의 분리는 결국 생명의 소멸과 결국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나무는 가지가 있어야 그 잎을 통하여 광합성 작용을 하게 되고 나무가 숨을 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지가 아무리 좋아도 나무 줄기에 의해서 생명의 수분이 공급되지 않는다면 그가지는 말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는 서로 뗄 수 없는 절대적인 결합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서로 떨어지면 다른 것은 고사하고 생명 자체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주님의 관계를 이처럼 생명의 관계로 설명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께서는 오늘 이 시간도 주님과 자신을 이처럼 생명의 관계로 이해하고 계십니까?

뗄레야 뗄 수 없는, 절대로 떨어져서는 안되는 관계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필요하시며 우리는 주님이 필요한 그러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이 관계의 문제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관계가 나빠지면 모든 것이 나빠지고 이 관계가 좋아지면 모든 관계가 좋아 집니다.

예수과 형통하면 모든 것과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우리는 그 지체입니다. 몸에서 떨어져나간 지체는 아무 쓸모가 없는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와 그리스도는 이러한 생명의 관계에 있습니다. 가지가 아무리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고 해도 나무줄기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그것은 쓸데없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아무리 능력을 가지고 있고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예수님에게서 떨어져나가면 예수 그리스도와 긴밀한 생명의 관계를 상실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라고 하셨습니다.

참 포도나무라는 표현은 거짓 포도나무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실재적으로 나무자체가 좋지 못한 종자여서 아무리 가지가 열과 성을 다해서 노력을 한다고는 하지만 좋지 못한 열매를 맺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열과 성을 더하면 할 수록 더욱 열매는 나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에 비유한다고하면 잡종의 포도나무 들포도나무가 아니라 좋은 포도나무라는 사실입니다.

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우리는 참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참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들입니다.

포도나무가 좋은데 그가지 좋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가지고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무엇이든 구하면 필요한대로 다 공급하는 것과 같이 예수님은 자기 안에 거하는 사람들이 열매 맺는 삶을 위하여 무엇이든지 필요하면 공급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7)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 것이 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있습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자기를 위해서 구하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하여 구하기 때문에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의 가지가 포도열매를 맺는데 필요한 것이어서 구하는 양분을 어찌 포도나무가 그것을 거절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 필요한 은사를 구하는데 하나님께서 거절하실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가지가 할일은 열매를 맺는 일입니다. 열매맺지 아니한 가지마다 찍어 불에던진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만물은 그 역할과 구실이 있는 것입니다. 그 역할과 구실을 다하지 못할 때는 결국 역할을 잘 하는 것의 방해만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 나무에 여러 가지가 있는 그 가지 중에 하나가 열매는 맺지 않고 영양분만 빨아들이면서 다른 가지의 열매까지 충실하지 못하게 한다면 틀림없이 그 가지를 잘라낼 것입니다.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고 이를 깨끗이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가지는 제 마음대로 놓여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농부이신 아버지의 관리와 심판과 결정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일에 싫증을 느끼는 순간부터 이미 열매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여기서 부터 많은 부작용들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고자 하는 열의, 뜨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가 교회에 싫증을 느끼는 순간부터 모든 신앙적인 병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의 가지가 열매를 맺는다면 그것이 포도가 분명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님과 연결된 가지같은 우리들은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이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안에 거하리라”(10)고 하셨습니다.

성경비유설교(4) 포도나무 비유

성경비유설교(4) 포도나무 비유(요15:1-11)

● 포도는 예로부터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작물 중의 하나로, 성경 속에서 도 가장 많이 등장하며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과수이다. 포도는 코카서스 지방과 카스피해 연안이 원산지로서 BC3,000년 무렵부터 재배하였다. 한국에는 고려시대에 중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추측되며 《조선왕조실록》 등에도 포도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재배는 1906년 서울 뚝섬에 원예모범장을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크게 유럽종·미국종·교배종으로 나뉜다. 유럽종은 품질이 우수하고 건조에 잘 견디지만 추위와 병충해에 약하다. 미국종은 유럽종보다 품질은 떨어지지만 추위와 병충해에 강하다. 한국에서는 주로 추위와 병충해에 강한 미국종과 교배종을 심는데, 한국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품종은 캠벌리로서 자줏빛을 띤 검정색으로 알이 중간 크기이며 8월 중순부터 하순에 걸쳐 익는다.

포도는 세계 과일 생산량의 1/3을 차지하며 과일 가운데 1위이다. 주요 생산국은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이며 총생산량의 약 35%를 생산한다. 포도는 당분(포도당·과당)이 많이 들어 있어 피로회복에 좋고 비타민 A·B·B2·C·D 등이 풍부해서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한다. 그밖에 칼슘·인·철·나트륨·마그네슘 등의 무기질도 들어 있다. 알칼리성 식품으로서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하고 빈혈에 좋고 바이러스 활동을 억제하여 충치를 예방하며, 레스베라트롤이라는 항암 성분이 있어서 암의 억제에도 효과가 있다. 신경세포를 만드는 신경효소의 활동과 효능을 증진하여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 등의 퇴행성 질병을 예방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 포도나무는 다른 나무나 받침대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스스로 뻗어서 하늘로 오르지 못한다. 그러나 조건이 나빠서 땅을 기거나 태양을 향해 치솟지 못하면 이내 말라버리거나 열매를 맺더라도 시고 떫어서 먹을 것이 못된다. 포도송이가 잘 열리려면 자주 가지치기를 해야 하고 햇볕을 많이 쬐어야 한다. 잎은 넓적하며 양떼나 소들이 즐겨 먹는다.

포도나무는 땅에서 물을 빨아 올리고 하늘과 공중에서 햇빛과 대기를 흡수하여 포도즙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젊음과 영생 및 다산의 상징이요, 포도잎은 신을 나타내는 표의문자의 기호였다. 창조의 여신에 빗대어지기도 했다.

● 요한복음 15장은 문맥상으로 보면, 13장부터 17장까지 이어지는 최후의 만찬과 고별설교의 일부분이다. 다른 복음서에는 나와 있지 않고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는데, 복음서 가운데 제일 마지막에 기록된 요한복음에는, 다른 복음서에서 빠져있는 부분들을 주로 기록했기 때문에 이처럼 다른 복음에서 없는 내용들이 많이 들어있다. 반면 다른 복음서에서는 공통적으로 나온 내용들이 요한복음에는 빠져있기도 하다. 예를 들면,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의 기도는 중요한 내용이지만, 공관복음에 중복되어 있기 때문에 요한복음에서는 과감하게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14장 마지막 절에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는 말씀으로 인해 본장과 16장(혹은 17장까지)의 말씀과 기도를 하신 장소가 어디인지에 대해 많은 추측이 있어 왔다. 최후의 만찬을 마치신 예수께서 다락방을 떠나 겟세마네로 가시면서 주위에 있는 포도원을 보시고서, 혹은 게세마네 동산으로 가시는 도중에 있는 성전 문에 새겨진 포도나무 문양을 보고 이 교훈을 주신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14-17장을 최후의 만찬을 베푼 다락방에서 행하신 ‘다락방 설교’로 묶어서 보고 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라는 ‘나는 ~이다’라는 표현은 요한복음에서 특이하게 사용된 것인데, 이것을 예수의 ‘자기 선언’이라고 말한다. 이같은 표현은 이적과 함께 연결되어 나타나기도 하는데, (1)오천 명을 먹이신 표적(요6:4-13) 이후에 ‘나는 생명의 떡이라’(요6:35)라고 선언하고 있으며, (2)나면서부터 소경된 자를 고치신 표적(요9:1-7) 이후에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3)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요11:1-44) 이후에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11:25)라고 선언한다. 이처럼 이적과 선언이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는 경우도 있으나 나머지는 본문처럼 직접적으로 이적과 관련되지 않고 단순히 ‘나는 ~이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물론 본문도 굳이 연결시키자면, 요2장에 나오는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최초의 이적과 연결시킬 수도 있겠으나, 억지로 연결시킬 필요는 없다. ‘나는 참 포도나무다’는 선언 외에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양의 문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는 7개의 선언이 요한복음에는 나온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라고 시작되는 요15장은 예수님과 성도들의 관계, 성도들 상호간의 관계, 그리고 성도들과 세상의 관계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을 차례대로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내용을 통하여 강조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이다. 다시 말해서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야말로 풍성한 삶의 열매를 맺을 수 있고, 또한 서로 사랑하게 될 뿐만 아니라 세상의 그 어떤 핍박에 대해서도 믿음을 굳게 지키고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이 가운데서도 예수님과 성도들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는 본문은 포도나무의 비유로 이루어져 있다. 즉,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참 포도나무에, 그리고 성도들을 포도나무의 가지에 비유함과 동시에 성부 하나님을 포도원 농부에 비유하심으로써, 상호간의 연합 관계에 대하여 교훈하신 것이다. 아마도 예수께서는 당시의 팔레스틴 지방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던 포도나무와 관련된 비유를 통하여 제자들에게 영적인 진리를 좀더 명확하고 실감있게 전달하려 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을 농부로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도나무로 비유하는 표현들은 구약성경에도 종종 등장한다. 하지만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기대와는 달리 좋은 포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불량한 ‘들 포도나무’로 표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 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사5:2).”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렘2:21).”

이에 반해 예수께서는 자신을 ‘참 포도나무’에 비유하심으로써, 불순종과 타락의 모습을 보인 구약의 이스라엘과는 달리 온전한 순종과 헌신을 하나님께 바칠 새 이스라엘의 모범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 그리하여 포도나무의 가지로 비유되는 성도들은 참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생명적 연합을 이루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풍성한 영적 열매들을 삶속에서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다. 그리고 아울러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 영적인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예수님 안에 거할 때만 가능하다는 교훈도 함께 가르치고 있다.

● 그러면, 포도나무 비유 혹은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교훈은 무엇인가?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다.

왜, 가지인 우리들은 예수라는 참 포도나무에 반드시 붙어있어야만 하는가? 본문을 살펴보면, 그 이유는, 그에게 붙어있어야만 과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4,5절). 그리고 7절을 보면, 그에게 붙어있어야만 기도를 응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과실을 많이 맺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며,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데, 그게 뭐 대단한 진리요 교훈이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본문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참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로서 마땅히 열매를 맺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만일 그렇지 않고, 마땅히 맺어야 할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농부되신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실 것이며, 제해진 가지들은 말렸다가 불에 던져져 태워버림을 당할 것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 자신은 참 포도나무인 예수께 붙어있는 가지인지 한 번 자문해 보기 바란다. 나의 삶 속에서 어떤 향기로운 열매를 풍성하고 맺고 있는가? 추수감사절에 강단을 장식해 놓은 과일이나 채소류 가운데 보면 포도향이 제일 강력하다. 다른 과일보다 유독 포도에 날파리들이 많이 꼬인다. 그 이유는 포도의 향기와 그 맛이 다른 과실보다 월등하기 때문이다. 신앙인으로서 여러분의 어떤 삶의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있는가? 여러분의 삶에 어떤 향기가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에게 번져가고 있는가?

그리고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포도나무 가지처럼 그렇게 향기롭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이 성도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선한 일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되, 그것을 자랑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행한 선행을 남들이 알아주기를 얼마나 고대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내가 행한 멋진 일들을 몰라주면 속상해 하고 불평, 원망하기까지 한다.

왜 주님께서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교훈하셨겠는가?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면 왜 십리까지 가라고 말씀하셨을까? 우리가 진실로 참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들이라면, 당연히 향기롭고 풍성한 포도송이를 주렁주렁 매달아야 할 것이며, 또 주 안에 있으면 열매는 자연스럽게 열리는 것이기 때문에, 신앙인으로서 내 삶의 열매는 결코 나를 내세워 자랑할 것이 못된다는 사실이다. 그저 겸손한 마음으로 나를 통해 역사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제자로서의 자세라는 것이다.

● 또한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다름 아니라, 가지치기에 관한 것이다. 포도농사를 비롯 과수농사 짓는 분들이 가장 공들이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과정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과수의 가지를 치는 작업이다.

가지치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고도의 전문적인 작업이다. 과수농사의 결과를 결정짓는 중요한 작업이다.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그 자체로서 쓸모없을 뿐 아니라 뿌리에서 빨아올리는 영양분을 쓸데없이 소모함으로 열매를 맺는 가지에 있어서도 풍성한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그대로 두면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좋은 열매를 더욱 풍성케 하기 위해서는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나, 나무를 병들게 할 수 있는 가지를 잘라버려야 한다.

그래서 영적 농부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수없이 기회를 주고 수많은 선지자를 파송하여 돌이키려 했으나 영적인 열매를 맺지 못한 육적 이스라엘을 가차없이 심판하고 제거해 버리셨던 것이다.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 가지치기를 잘해야 한다. 훌륭한 운동선수는 불필요한 동작을 하지 않는다. 그 순간에 가장 적합한 동작을 만들기 위해 운동선수들은 얼마나 노력하는지 모른다.

훌륭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생활 속에서 가지치기를 잘해야 한다. 나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복되고 성공적인 삶을 이끌어 가는데 불필요한 가지들이 있음을 인정하고 가지치기를 잘 하기 바란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의 우리 인생은 그리 길지 않고, 우리의 힘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가지를 치지 아니하면 제대로 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쓸데없이 힘만 빼는 가지들이 무엇인가? 신앙인답게 사는 방해되는 모든 것들을 제거하기 바란다. 그래야 풍성한 열매가 여러분의 삶 속에서 맺히기 시작한다.

●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인가? 어떻게 해야 성도들이 주 안에 거하고 주님의 말이 우리 안에 있어, 열매를 풍성히 맺으며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면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는 말인가? 9절 이하의 말씀은 이 물음에 답을 하고 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온전히 하나로 결속되는 것인가? (9-11절 읽기)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기 위해 성도는 그의 ‘사랑’안에 거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그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인가? 10절에 보면 주님의 계명 즉 말씀을 지키는 것이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계명이 무엇이냐? 바로 사랑의 계명이다. 예수님께서 몸소 실천해 보여주신 사랑의 계명! 자기를 낮추고, 자신을 배반하는 자를 용서하고 오히려 섬기기까지 하며, 결국에는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 바로 이 사랑의 계명을 지키라는 것이다.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 참으로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요, 이것이 바로 주님과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요, 이것이 바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비결이다.

오늘 나의 삶 속에 풍성한 열매가 부족한가? 그것은 달리 표현하면, 내가 지금 주님께서 명령하신 ‘사랑의 계명’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이다. 내 생활에 기쁨이 사라져 버렸는가? 주일 예배도 드리고 죄 짓지 않고 선량하게 살려고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삶이 기대되고 매일매일이 벅차고 즐겁고 기쁘지 않다면, 자신에게 반문해 보자. 내가 지금 주님의 사랑의 계명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가?

불신자들과 똑같이 내 욕망대로 내 감정대로 내 경험과 내 지식만 가지고, 판단하고 반응하고 처신해서는 복음적인 삶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예수께서 앞서가시며 보여주신, 자신을 죽임으로써 남을 살려내는 희생과 섬김의 삶을 따라가지 아니하면, 아무리 교회 다녀도, 참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 같아도 열매는 맺히지 않는다. 기도의 응답도 없고, 기쁨도 없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순간에도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어떡하시렵니까? 마른 가지처럼 버려져 불 가운데 던져지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풍성한 열매를 맺고 기도에 응답받으며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사시기 원합니까? 날마다 주님과 교통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동산교회 교우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 (요한 15장)

예수께서는 충실한 사도들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면서 격려하고 계십니다. 밤이 깊어 어쩌면 자정이 지났을 것입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한 가지 비유를 드십니다.

예수의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이며 내 아버지는 경작자이십니다.” (요한복음 15:1) 이 비유는 여러 세기 전에 이스라엘 민족에 관해 기록된 말과 비슷한데, 그 민족은 여호와의 포도나무라고 불렸습니다. (예레미야 2:21; 호세아 10:1, 2)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그 민족을 곧 버리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23:37, 38) 그러므로 지금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은 새로운 것입니다. 이 비유에 나오는 포도나무는 예수입니다. 아버지께서는 기원 29년에 예수에게 성령으로 기름부으셨을 때부터 이 포도나무를 경작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포도나무가 예수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님을 이렇게 알려 주십니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모두 [내 아버지가] 없애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하게 손질하여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여러분도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이며 여러분은 가지입니다.”—요한복음 15:2-5.

예수께서는 자신이 떠난 후에 돕는 자인 성령을 보내 주겠다고 충실한 사도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51일 후에 사도들과 그 밖의 사람들은 성령을 받을 때 포도나무의 가지가 됩니다. 그리고 “가지”는 모두 예수와 결합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예수께서 설명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나를 떠나서는 여러분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가지”들 즉 충실한 제자들은 예수의 특성을 본받고, 하느님의 왕국에 대해 사람들에게 열정적으로 알리고, 더 많은 제자를 삼아서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예수 안에 머물러 있지 않아서 열매를 맺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그는 밖으로 던져”질 것이라고 설명하십니다. 그 반대 상황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 말이 여러분 안에 머물러 있다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청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여러분에게 이루어질 것입니다.”—요한복음 15:5-7.

이제 예수께서는 이미 두 차례나 언급하신 내용을—자신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다시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15, 21) 그분은 제자들이 그 계명을 지키고 있음을 뚜렷이 나타낼 수 있는 주된 방법을 이렇게 알려 주십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이, 여러분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느님과 그분의 아들을 사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수의 말씀은 이러합니다. “내 계명은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친구를 위해 자기 생명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내가 명령하는 것을 행하면 여러분은 나의 친구입니다.”—요한복음 15:10-14.

몇 시간만 있으면 예수께서 자신에게 믿음을 나타내는 모든 사람을 위해 생명을 바침으로 사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분의 본에 감동을 받아 그와 같이 서로를 희생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런 사랑을 보일 때 그들이 누구인지가 드러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미 이렇게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사랑이 있으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 여러분이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요한복음 13:35.

사도들은 예수께서 그들을 “친구”라고 부르시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렇게 부르는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나는 여러분을 친구라고 불렀습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모두 여러분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소중한 관계가 아닙니까! 예수의 절친한 친구가 되어 아버지께서 예수에게 말씀하신 것을 알게 되다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관계를 누리려면 “계속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예수의 이런 말씀대로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내 이름으로 무엇을 청하든지 아버지께서 그것을 여러분에게 주실 것입니다.”—요한복음 15:15, 16.

이 “가지”들 즉 제자들 가운데 사랑이 있으면 앞으로 닥칠 일을 인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이 제자들을 미워할 것이라고 경고하시면서 또 위로가 되는 말씀도 하십니다.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하면 여러분보다 먼저 나를 미워했다는 것을 아십시오. 여러분이 세상에 속해 있다면 세상은 여러분을 자기의 것으로 여겨 좋아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 ··· 때문에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합니다.”—요한복음 15:18, 19.

예수께서는 세상이 제자들을 미워하는 이유를 더 설명하십니다. “그들은 내 이름 때문에 여러분을 대적하여 그 모든 일을 할 것입니다.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예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죄가 있는 이유는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 때문이라고 그분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그들 가운데서 하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보고도 나와 나의 아버지를 미워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미워하기 때문에 실제로 예언이 성취됩니다.—요한복음 15:21, 24, 25; 시편 35:19; 69:4.

다시 한 번 예수께서는 돕는 자인 성령을 보내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 강력한 힘은 그분의 모든 제자가 받을 수 있고, 그들이 열매를 맺는 데 즉 “증언”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요한복음 15:27.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 비유에서 나무의 뜻은?

기독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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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5장에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비유를 설명하면서 예수님은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포도나무를 교회라고 적용 해석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과 날마다 함께하는 삶속에 교회를 통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세상의 교회가 완전하지 않기에 잘못 이해하면 교회에 충성하게 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나아가 시편133장의 형제와 동거함에 대한 말씀을 요한복음15장과 연결 해석하는 것도 옳은지 궁금합니다. 주님 안에 거한다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해주세요. [답변] 예수님이 어떤 영적 진리를 가르칠 때에 자주 사용하셨던 비유의 역할을 정확히 아셔야 합니다. 어디까지나 예수님이 강조하려는 진리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역할로 그칩니다. 비유 자체의 단어, 문구, 문장 등을 따로 떼어서 그것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강조하거나 예수님이 결론으로 내려준 진리보다 앞세우면 아주 잘못된 해석입니다. 이런 비유의 해석 원리를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는 한국 속담에 비추어서 설명해 왔습니다. 다시 반복하자면 기역 자의 모양이 낫과 비슷하다는 뜻이지 낫에 대해서 설명하려는 의미가 아닙니다. 낫은 단지 기역 자 모양과 같은 여러 예들 중에 하나로 누구나 익히 알기에 대조한 것뿐입니다. 동일한 맥락에서 예수님은 신자라면 당신 안에 거해야 하는데 어떻게 거해야 하는지 알기 쉽고 또 정확하게 이해시키려고 포도나무를 예로 든 것입니다. 포도나무는 예수님이고 가지는 신자를 상징합니다. 크게 세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 모든 나무 가지는 당연히 그 나무에 붙어 있기 마련입니다. 둘째 다른 나무에 붙은 가지는 당연히 다른 열매를 맺습니다. 셋째 포도나무에 가지로 붙어만 있으면 포도열매는 자연히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4절)고 비유 안에서 이미 설명해주었습니다. 포도나무는 당시 유대 땅에 무화과와 함께 가장 흔한 나무로 그 생태를 제자들이 익히 알고 있으며 또 열매가 풍성히 열린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비유에 등장시킨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비유의 포도나무 가지처럼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슨 일을 하든 오로지 예수님의 보호 인도만 구하면서 그분의 말씀대로 따르며 자기에게 맡기신 소명을 실천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럼 당연히 성령이 역사하여 저절로 복음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이를 확대 적용하면 교회에 충성하는 것도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의 한 가지 부분적인 모습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바로 포도나무라는 것은 질문자님이 이미 예리하게 지적하셨듯이 조금 잘못된 해석입니다. 신자들을 교회 일에 묶어두려는 의도가 개입되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어떤 조직체 개별 교회라도 결코 완전하지 않습니다. 거기다 더 근본적인 잘못이 있습니다. 교회도 비유에 적용하면 가지일 뿐 나무 자체가 결코 아닙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기에(골1:18) 교회는 그 머리(포도나무)에 붙은 가지입니다. 그리고 목사, 집사, 교사, 전도자 등으로 직분만 다르지 동등한 신분과 위치에서 함께 모여서 봉사하는 모든 성도는 교회라는 큰 가지에 붙은 잔가지들입니다.(엡4:11,12) 따라서 교회가 정말로 예수님을 머리로 모셔야, 순전한 참복음이 성경의 진리대로 선포 실현되어야만 큰 가지라도 되는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담임 목사가 교회의 머리가 아니며 다른 모든 성도와 함께 잔 가지일 뿐입니다. 이런 원리는 신자가 속한 모든 공동체에 다 적용됩니다. 신자 가정의 머리도 아버지가 아니고, 사장이 신자인 직장의 머리도 사장이 아니며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교회와 마찬가지로 가정과 직장은 예수님이라는 포도나무에 붙은 큰 가지이며 아버지 어머니 자식들이나 사장 전무 부장 직원들은 그 직분만 다르지 똑 같은 신분과 위치를 지닌 잔가지들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성경적인 뜻은 세상에서 불려 나와서 예수님만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신자들의 모임입니다. 또 그래서 예수님은 조직체 교회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슨 일을 하든 포도나무인 당신에게 가지로 붙어 있으라고 명한 것입니다. 성령이 저절로 맺게 해주는 복음의 열매를 드러내려면 오히려 불신자들과의 만남이나 모임에서 세속의 흐름을 거역하고 예수님에게 더더욱 온전히 붙어있어야 할 것입니다. 시편133편을 요15장과 연결해서 해석하는 것이 옳은지 물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명했는지 모르기에 딱 잘라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모든 성경구절은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인데다 계시된 진리들이 동일하게 그분의 뜻이라 상호 연결해 해석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정확한 뜻이 상호 일치해야 하든지, 만약 다르다면 어떤 측면에서 서로 연결되는지 구체적인 설명이 따라야합니다. 간단하게 시편133편이 어떤 의미인지 살펴봅시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먼저 형제의 연합하여 동거함이 아주 아름답다고 찬양했습니다.(1절) 그리고 3절 후반에 거기서 여호와는 영생이라는 복을 명령했다고 결론 내립니다. 그 사이의 2절과 3절 전반부는 연합하여 동거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눈에 보이는 사물에 비유한 것입니다. 그럼 “거기가 어디인지” 따져봐야 합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고 있는 그 장소입니다. 구약에서 형제는 단순히 가족이나 이웃을 넘어서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 동족 전부를 말합니다. 그리고 동거는 함께 살고 있다, 남아 있다. 끝까지 견뎌낸다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문맥에서 의미는 이스라엘 동족 전부가 함께 살 수는 없기에 동일한 믿음 안에서 끝까지 하나가 되어 견디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곳에 하나님이 영생의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시편의 제목을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붙여놓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앞의 132편과는 달리 “여호와의 처소”나 “전능자의 성막” 같이 성전을 뜻하는 표현이 전혀 없습니다. 단순히 형제들이 온전한 사랑으로 섬기는 그곳이라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 활동에 충성하는 것을 강조하는 시가 아니라 성도들이 온전한 믿음으로 서로 섬길 때에 영생이 약속으로 주어졌다는 것을 강조하는 시입니다. 이 시편을 다윗이 저작한 의도와는 다른데도 단지 한두 단어의 의미가 서로 비슷하다고 해서 교회라는 조직체와 직접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한 적용입니다. 아주 짧은 시편인데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묘사와 내용이 아름답고 은혜로워서 성전 예배에서 찬송가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2021/3/25 * 이 글은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박진호 목사(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 담임)가 그의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올린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맨 아래 숫자는 글이 박 목사의 웹페이지에 공개된 날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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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다 성경』의 ‘포도나무 비유’ 해석, 유감

류모세, ‘열린다 성경: 절기 이야기’ 다시 읽기

성경 속 대화는 말하는 이나 듣는 이 사이에 깊게 형성된 공감대를 짚어내야만 실감 있게 그 이야기나 대화를 이해할 수 있다. 그중 하나가 이른바 예수님의 ‘포도나무 비유’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 15:5)

이 포도나무 비유를 접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성경이 보증하는 최고의 포도 산지인 헤브론이다. 해발고도도 1,000미터 안팎에 이르는 지역으로, 겨울철에 다른 지역보다 비나 눈도 많이 내린다. 이스라엘에서 포도나무 과수원이 있는 곳은 ‘어디에서나’는 아니었다. 유대 산지 헤브론이나 북부 골란고원 등 특별한 지역이었다, 그것은 포도나무가 자라기에 좋은 자연 환경 덕분이었다. 농업기술이 발달한 지금도 아무데서나 포도원을 운영하고 있지 않다. 적당히 거친 자연 환경과 바람이 많이 불어주고 일조량이 많고 일교차가 큰 곳이 포도원 농사의 적격지이다.

‘제거해 버린다’는 ‘들어주신다’(?) 요한복음 15:2절 말씀은 성서시대 이스라엘에서의 포도 농사법에서 나온 독특한 표현이다. 포도나무의 특징은 길게 뻗어나가는 가지에 있다. 오늘날 포도 재배에서는 ‘Y’자 철사를 박아놓기 때문에 포도나무 가지는 철사를 따라서 감아 올라가면서 원없이 자랄 수 있다. 그러나 성서시대 이스라엘에서는 오늘날의 포도 재배법과 상황이 전혀 달랐다. 철사가 귀했으므로 포도 가지는 뱀처럼 땅을 기어갈 수밖에 없었다. – 류모세, 열린다 성경: 절기 이야기 성경의 비밀을 푸는 절기 이야기, 두란노, 2009년, 114쪽

그러나 헤브론 지역 등의 포도나무와 가지의 모양은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곳의 포도나무는 정말 특별하다. 포도나무는 굵고 단단한 고목(?) 수준인 것에 비하면 가지는 그야말로 작고 가늘고 연약하게만 보인다. 그런데도 그 연약한 가지에서도 튼실한 포도를 맛볼 수 있다.

또한 포도원지기들은 수년간 포도나무를 다듬고 가꾸면서 포도나무의 모양을 Y자 또는 T자에 가까운 형태로 다듬어 놓았다. 자연스럽게 지지대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포도나무 가지가 땅으로만 쳐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땅에 닿은 포도 가지는 열매를 제대로 맺을 수 없다는데 있다. ‘우기’에는 땅에 닿은 부분이 습기로 인해 썩고, ‘건기’에는 자체적인 뿌리를 내리다 보니 본 뿌리에서 영양분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 류모세, 열린다 성경: 절기 이야기 성경의 비밀을 푸는 절기 이야기, 두란노, 2009년, 114쪽

류모세, 열린다 성경: 절기 이야기 성경의 비밀을 푸는 절기 이야기, 두란노, 2009년

포도원 농사는 봄철부터 시작한다. 계절적으로는 건기이다. 이스라엘은 겨울 우기와 여름 건기로 구분한다. 포도나무 농사는 건기에 시작하여 건기에 마무리된다. 그런 점에서 류모세 목사가 묘사하는 우기에는 땅에 닿은 (포도나무 가지) 부분이 습기로 인해 썩는다는 생각은 다시 생각해봐야할 해석이다.

헤브론의 맛좋고 실한 포도는 그 가지의 힘이 아니라 튼실한 포도나무 덕분에 열매를 맺는 것이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예수님과 그 무리들은 이 본문을 이해했을 것이다. 이처럼 예수의 제자들도 예수의 힘(존재) 때문에 실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의 비유는 철학적, 현학적이거나 이른바 영적인 이해를 필요로 하기보다, 다분히 일상적인 이해와 공감대를 바탕으로 주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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