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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0일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여호와 하나님이\” (창세기 2장)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이 말하는 주어가 누구인가 하는 겁니다
그중에서도 하나님이 주어로 나타나시는 건
정말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은 아담이, 노아가, 아브라함이, 다윗이
주인공인 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주목하는 책입니다
그 하나님 중에서도 1장의 하나님(엘로힘)과
2장의 여호와는 조금 뉘앙스가 다릅니다
엘로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자로서
하나님을 강조하는 이름이라고 한다면
여호와는 우리 인간에게 다가오셔서
우리와 언약을 맺으시고 우리를 돌봐주시는
더 가깝고 친밀한 하나님을 나타냅니다
이 뉘앙스를 잘 알고 읽어야 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일곱째날을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십니다
이 날은 이제 주일이 되어 우리가 예배하며
힘과 용기를 얻고 회복하는 날입니다
쉬어서 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주목하고
그분 품에 안기기에 평안한 것입니다.
———————————————————————————–
* 부산 성민교회 : 부산시 사하구 승학로 201(괴정동).
http://sungmin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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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창세기 2 장 강해
- Author: 홍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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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15.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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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장 & 성경주석
<창세기 2장 흐름정리>
인간 타락을 설명하기 위한 서론적인 단계로서, 인간의 최초 상태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친히 불어 넣으신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의 고귀성과 존엄성을 분명하게 부각시키는 내용이다. 그리고 생명나무에 대한 언급은 인간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순종해야함을 강력히 주지시킨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할 때 가장 복된 삶을 살 수 있다. 순종과 불순종이라고 하는 주제는 향후에 전개되는 인간 역사의 복과 화를 결정짓는 근본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창세기 2장 줄거리>
1. 최초의 안식일.
4. 창조의 방식.
8. 에덴동산의 창설.
10. 거기서 흘러나는 강.
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19,20. 피조물들의 이름 짓기.
21. 여자의 창조와 결혼 제도.
<창세기 2장 개역한글>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2.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4.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5.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도 있더라
10.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12.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렸고
14. 세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네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20.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25.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창세기 2장 성경주석>
2:1 이루니라.
2장의 처음 세 절과 4절의 전반부에서는 실제로 첫 장의 창조 이야기가 중단없이 계속되고 있다. 1절은 장엄한 회고로 앞선 6 일간의 일, 뒤따른 안식일의 쉼을 연결시킨다. 하나님이 “그 지으시던 일을” 다했을 때, 그는 이루지 못하고 남겨 놓은 일이 없었다(참조 히 4:3). 여기서 “만물”, 곧 차바(s.aba’)라는 말은 창조된 모든 것들을 의미한다.
2:2 일곱째 날에.
(「개역한글판」에는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로 되어 있음). 1절과 2절 사이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난제, 곧 전자는 하나님의 일이 여섯째 날에 마쳤다고 진술하고, 후자는 일곱째 날에 마쳤다고 진술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70인역」, 「사마리아오경」 및 「시리아역」은 그 말이 처음 사용되고 있는 히브리 본문의 “일곱째”라는 말을 “여섯째”라는 말로 대체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선택하였다. 어떤 주석가들은 히브리 본문의 “일곱째”라는 말은 필사자의 실수라고 생각하면서 이러한 변경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그들 자신이 세운 본문 비평에 대한 기본적인 규칙의 하나, 곧 일반적으로 두 개의 가능한 해석들 가운데 더 어려운 것을 원래의 것으로 취한다는 규칙을 범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개역한글판」을 만든 사람들은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라고 번역하였다-역자 주) “마치시니”(ended)라는 말은 예칼(yekal)이다. 칼뱅을 필두로 하여 몇몇 학자들은 예칼을 “끝냈다”(had finished)라는 말로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문법적으로 가능하다. 다른 해석은 창조 사업이 안식일의 제정 직후에 마쳤다고 생각한다. 창조의 완성은 소극적인 면에서 창조 사업의 정지(停止)에 있으나, 적극적인 면에서는 일곱째 날을 복 주고 거룩하게 함에 있다. 정지 자체가 그 일의 완성의 일부를 이루었다.
2:2 안식하시니라.
“안식하였다”는 동사 샵바트(s∨abbat)는 실제로 노동이나 활동을 “중단하는 것”을 의미한다(참조 창 8:22; 욥 32:1 등). 인간 기술공이 자신의 일의 이상을 구현하게 되었을 때 그 일을 끝내는 것처럼, 무한히 더 높은 지각을 지닌 하나님은 어떤 새로운 것을 생산해내기를 중단함으로써 세상의 창조를 완수하고 “안식하였다.” 하나님은 쉼이 필요하여 안식하지 않았다(참조 사 40:28). 그러므로 하나님의 안식은 탈진이나 피로의 결과가 아니라, 앞서 행한 일의 중단이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일곱째 날이라”는 예상되는 구절이 성경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성경 주석가들은 안식의 기간은 앞선 각각의 여섯 날들처럼 24시간만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여섯째 날의 창조가 마칠 때에 시작하여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성경 구절은 그러한 견해를 반박한다. 이 구절은 편견없는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안식이 제7일 동안에만 일어났다는 사실을 인식시켜 주는 유일한 성경 본문은 아니다. 왜냐하면 십계명 자체도 하나님이 6일 동안 일하고 창조 주일의 일곱째 날에 안식하였음을 명백히 진술하기 때문이다(출 20:11).
본문에 담긴 말에 의하면, 6일의 창조의 날들은 일반적인 길이를 갖는 이 땅의 날들이었다. 이와 다르게 해석할 어떤 분명한 빛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일곱째 날을 동일한 방법으로 이해해야 하며, 그것이 이 땅의 안식일의 근거로 언급되는 모든 구절에서 보통의 하루로 간주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출 20:11; 31:17).
2: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이 쉼의 날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한 설명이 첨가되고 있다. 여기서 거룩한 기록은 매주의 안식일을 하나님의 창조 사업과 일곱째 날의 쉼과 밀접하게 관련시키는데, 이는 넷째 계명에도 그렇게 나타나 있다. 일곱째 날을 축복했다는 말은 그것에 의해 그 날이 하나님의 은총의 특별한 대상이 되며, 그의 피조물들에게 복을 가져다 줄 날로 선언되었음을 시사하였다.
2:3 거룩하게 하셨으니.
거룩하게 하시는 행위는 그 날이 거룩하며 거룩한 목적을 위하여 구별되었다는 선언에 있었다. 나중에 시내산이 거룩하게 되었듯이(출 19:23), 즉 한동안 하나님이 거하는 곳으로 신성함을 입었듯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 직분을 위하여 성별되었듯이(출 29:44), 희년이 종교적인 목적을 위하여 거룩하게 바쳐졌듯이(레 25:10), 여기서는 일곱째 날이 거룩하게 되었으며, 그와 같이 거룩한 날로 선언되었다. 일곱째 날을 복 주며 그 날이 거룩하다고 선언한 이 행위는 인류를 위해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안식일이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매주의 제7일 안식일은 흔히 유대인 시대에 속한 제도로 간주되어 왔지만, 영감의 기록은 최초의 이스라엘 백성들(야곱-이스라엘의 자손)이 태어나기 2,000년도 훨씬 전에 제정되었다고 선언한다. 더욱이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막 2:27)이라고 선언한 예수의 말씀이 있는데, 그 말은 이 제도가 유대인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해서 제정된 것임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2:3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하나님이 사람에게 일곱째 날에 안식하도록 명한 데에는 사람이 그의 창조주의 사랑과 선함에 대하여 숙고함으로 창조주와 같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누리도록 명하는 것보다 더 고귀한 이유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6일 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한 것처럼, 사람도 6일 동안 수고하고 일곱째 날에 쉬어야 한다. 이 매주의 안식일은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거룩한 제도이므로, 입법자인 하나님은 그것의 준수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거룩한 시간의 일부나 전부를 빼돌리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의 죄와, 인간의 능력과 그의 시간의 원 소유자인 하나님의 것을 약탈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한 제도인 안식일은 우리의 경의와 존중을 받을 가치가 있다. 하나님은 이를 게을리하는 것을 죄로 여긴다.
안식일은 일상적인 육체적 노동을 삼가며 정신과 마음을 거룩한 사물에 바칠 것을 요구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회(聖會)로 안식일을 사용하도록 훈계를 받았다(레 23:3). 복음서는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안식일을 그렇게 사용하였으며(눅 4:16; 행 17:2; 18:4 등), 그리스도의 지상 봉사가 마친 후에도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계속해서 준수되어야 한다(마 24:20)고 증언한다.
안식일이 새 땅에서도 예배일로서 여전히 기념될 것이라(사 66:23)는 사실은 하나님이 결코 안식일의 준수를 다른 날로 옮기도록 의도하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매주의 안식일은 창조의 기념일로서, 인간에게 매주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에 대하여, 그리고 자비로운 창조자이자 공급자인 그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빚지고 있는지를 상기시켜 준다. 안식일을 거절하는 것은 창조자를 거절하는 것이며, 온갖 종류의 거짓 이론들을 위한 문을 활짝 여는 것이다. “안식일은 그분의 존재에 대한 계속적인 증거이며, 그분의 위대하심과 그분의 지혜와 그분의 사랑을 상기시켜 주는 방편이다. 안식일이 항상 신성하게 준수되어 왔다면, 무신론자나 우상 숭배자가 결코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336).
2:4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이 말은 창세기 2장의 설명을 도입한다. 많은 주석가들은 2:4~3:24를, 1:1~2:4의 기록보다 더 후대에 다른 저자로부터 나온 두 번째의 다른 창조에 대한 기록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이 지지할 수 없는 이론에 관하여는 창세기에 대한 서론을 참조하라. 그 내용을 연구하면 2장은 결코 1장의 창조 이야기에 대한 다른 해석으로 생각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2장의 목적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 동산의 가정에 두는 것인데, 이 일은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이루어진다. 하지만 2장은 에덴의 가정이 창설된 이후에 한 그것에 대한 설명이다. 이 정보가 없었다면, 에덴의 상태에 있었던 이 세상에 대한 우리의 설명은 슬프게도 불완전할 뿐 아니라 창세기 3장의 사건들─인간의 타락─도 거의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장(창세기 2장)에는 인간의 창조, 에덴 가정의 묘사,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충성심 혹은 그의 가정에 대한 도덕적 권리에 대한 시금석, 곧 그의 지성 혹은 하나님의 창조물들을 통치할 정신적 자격에 대한 시금석, 그리고 이 첫 가정의 설립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추가적인 세부 사항들이 포함되어 있다.
2:4 천지의 창조된.
1:1에서 시작된 창조 이야기는 이렇게 종결된다. 이 말들은 다양하게 해석되었다. 그것들은 브히바르암(behibare’am)의 번역인데, 때때로 그렇게 해 온 것처럼 “그것들이 창조된 후에”라고 번역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문자적으로 “그들을 창조할 때에”(in their crea-tion)를 뜻하며,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는 전체 구절은 “이것은 천지가 창조되었을 때 그것들의 기원에 대한 역사이다”라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다.
2:4 대략이 이러하니라.
“대략”에 해당하는 단어 톨레도트(toledot)는 일반적으로 인간 가족의 역사, 즉 그의 자손들의 출생(참조 5:1; 6:9; 11:10 등)을 언급하는 데 사용된다. 여기서 이 말은 인간의 친족 관계가 아닌, 1:1과 2:1을 되새기는 구절인 “천지”의 창조에 대해 사용된 유일한 경우로 나타난다. 한 주석가는 “대략”(generations)이라는 말이 “그것들의 생성에 대한 역사나 설명”을 적절하게 언급한다고 주장한다. 유대백과사전은 이 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천지의 창조 과정은 2:4에서 족보와 같은 역사로 간주된다”(유대백과사전, “Generation”). “각 날은 세대 또는 발생(generation)이라고 불리었는데 그것은 이 날들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업의 어떤 새로운 부분들을 발생시켰거나 생산했기 때문이었다”.
2:5 초목.
4~6절은 지표면의 모습, 특히 창조 주일의 여섯째 날에 출현한 인간의 창조 직전의 식물에 대해 간략하게 묘사함으로써 7절의 인간 창조를 예고한다. 여기에 땅을 “경작할” 누군가가 출현하기만 하면 완전하게 될 낙원이 있다. 기대에 부풀어 활기에 넘친 모든 자연은 마치 관현악단이 모든 악기를 조율한 가운데 그들의 지휘자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들의 왕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다.
2:6 안개.
“안개”로 번역된 히브리어 에드(’ed)는 다소 모호한 뜻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이 본문 외에는 유일하게 욥 36:27에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이 말을 “홍수”를 뜻하는 앗수르어 에두(edu)와 비교하여, 그 뜻을 성경에 나타난 이 두 구절에 적용시켰다. 그러나 “홍수”라는 말은 이들 본문의 어느 쪽과도 맞지 않으며, “안개” 또는 “수증기”는 두 경우 모두 의미가 통한다. 고대의 번역자들은 이 말을 대개 “샘”으로 표현하였는데, 이 번역은 그들이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음을 나타낸다. “샘” 하나가 온 땅을 적실 수 있었을 것 같지 않은 사실로 볼 때, “샘”이 에드에 대한 바른 번역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히 나타난다. “안개”는 가장 훌륭한 번역으로 보이며, 이 경우 우리는 “안개”를 “이슬”과 같은 뜻으로 생각할 수 있다.
노아 당시의 사람들이 하늘에서 비가 내려 홍수로 이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비웃고, 노아가 “아직 보지 못하는 일”(히 11:7)을 믿으므로 칭찬을 받은 사실은 비가 홍수 전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음(부조와 선지자, 84 85)을 나타낸다. 노아의 믿음의 눈만이, 물이 하늘에서 떨어져 자신이 지은 방주를 피난처로 찾지 않은 모든 생물을 익사시키는 장면을 그려볼 수 있었다. 홍수 후에 무지개가 제정되었으며(9:13~16), 그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되는 사실은, 비가 그 사건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다는 의견에 무게를 더해 준다.
2:7 흙으로.
사람이 땅에서 유래한 물질들, 곧 땅의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과학에 의해 확증되고 있다. 죽은 다음에 일어나는 인체의 분해는 동일한 사실을 증명한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주된 요소들은 산소, 탄소, 수소 그리고 질소이다. 다른 많은 요소들도 적은 비율로 존재한다. 사람이 “흙으로” 만들어졌으며, 또한 취함을 입은 “땅으로 돌아”갈(전 12:7) 것이라는 사실은 얼마나 사실적인가.
2:7 사람을 지으시고.
아담의 창조에 관하여 추가적인 중요한 사항들이 제시되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하나님의 작업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의 손이 창조의 신비한 일을 수행하는 것을 살펴보도록 허락된다. “지으시고”에 해당하는 단어 야차르(yas.ar)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고안(考案)과 모습에 일치하도록 형체를 빚어 모양을 만들어내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 말은 토기장이(사 29:16; 49:5 등), 우상을 만드는 금장색(사 44:9; 합 2:18) 그리고 하나님의 활동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며, 하나님은 다양한 것들, 그 중에서도 특히 빛(사 45:7), 사람의 눈(시 94:9), 마음(시 33:15), 계절(시 74:17)을 조성한다.
2:7 생기.
“숨”[氣]은 느샤마(nes∨amah)의 번역이다.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생명을 주는 원리가 아담의 생명 없는 몸에 들어갔다. 생명의 불꽃이 그의 육체로 전가되도록 해준 매개체를 하나님의 “(생)기”라고 말한다. 동일한 사상이 욥 33:4에도 나타난다. “전능자의 기운(nes∨amah)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사람에게 나누어진 그 “(생)기”는 그의 생명과 같다. 그것은 생명 자체이다(사 2:22). 사망 시에는 “숨(nes∨amah, 생명)이 끊어진”다(왕상 17:17). 사람에게 있는 이 “생명의 호흡”은 동물들에게 있는 “생물의 기식”과 결코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만물은 그들의 생명을 하나님에게서 받기 때문이다(창 7:21, 22; 전 3:19). 그러므로 그것은 정신이나 지능이 될 수 없다.
2:7 생령.
사람의 생명 없는 형체에 이 하나님의 “(생)기”(nes∨amah)가 불어넣어졌을 때, 사람은 살아 있는 “영”, 네페쉬(nepes∨)가 되었다. 네페쉬라는 말은 다양한 뜻을 지니고 있다. (1) 숨(욥 41:21), (2) 생명(왕상 17:21; 삼하 18:13 등), (3) 애정의 자리로서의 마음(창 34:3; 아 1:7 등), (4) 살아 있는 존재(창 12:5; 36:6; 레 4:2 등), (5) 인칭 대명사를 강조하기 위해(시 3:2; 삼상 18:1 등). 네페쉬는 하나님에 의해 조성되며(렘 38:16), 죽을 수 있으며(삿 16:30), 죽임을 당하며(민 31:19), 먹히며(은유적으로, 겔 22:25), 구속(救贖)되며(시 34:22), 소성케 된다(시 19:7)는 것을 주목하라. 이 중 아무것도 혼, 즉 루아흐(ruah.)에 적용되지 않으며, 이것은 두 용어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가리킨다. 위의 조사에서 2:7의 네페쉬를 「제임스왕역」이 “영혼”(soul)으로 번역한 것은, 만일 그것이 흔히 사용되는 표현인 “불멸의 영”이라는 의미라면, 적절치 않다는 것이 위의 검토를 통해 명백해진다. 이 개념은 널리 퍼져 있지만, 성경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이 바르게 번역될 수 있다: “사람이 산 존재가 되었다”(「개정표준역」). “영”을 “존재”와 동의어로 간주할 때, 우리는 이 본문에서 네페쉬의 성경적인 의미를 얻게 된다.
2:8 하나님이…동산을 창설하시고.
에덴 동산의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홍수가 본래의 지구의 물리적인 특징을 너무 바꿔놓았기 때문에 과거의 위치를 현재에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이 동산을 “공원”을 뜻하는 페르시아어에서 유래한 말인 “낙원”(paradise)이라고 부른다. 낙원을 뜻하는 히브리어 파르데스(pardes)는 구약에서 몇 번밖에 나타나지 않는데(느 2:8; 전 2:5; 아 4:13), 에덴 동산에 대한 이름으로보다는 나무를 언급하기 위해 나타난다. 헬라어로 파라데이소스(paradeisos)인 “낙원”은 「70인역」 역자들에 의해 우리의 첫 부모의 가정에 처음으로 적용되었다.
2:9 나무.
사람의 훌륭한 거처를 준비하는 일에 실용성뿐 아니라 장식(裝飾)에도 주의가 기울여졌다. 그의 필요와 기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각종 식물들이 제공되었다. 꽃과 나무와 관목들은 그 향기로는 사람의 감각을 기쁘게 해주었고, 그 절묘한 형태와 매혹적인 색깔로는 눈을 즐겁게 해주었으며, 감미로운 과일로는 미각을 만족케 하였다. 온 시대를 통하여 에덴은 세상적 탁월함에 대한 인간의 가장 높은 개념이 되었다.
2:9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이 말들이 나타나는 순서는, 마치 그것들이 사후 고안인 것처럼 현대 언어권에 사는 우리에게는 이상하게 보인다. 이 때문에 어떤 비평적인 학자들은 9절의 후반부가 나중에 첨가된 것이거나 본래의 것이 와전(訛傳)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영어로 번역되었을 때 이상한 것처럼 보이는 이 배열은 히브리어에는 보통 있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본문의 순수성에 대해 의심할 구실이 전혀 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12:17은 문자적으로 “여호와께서 바로에게 큰 재앙을 내리시며, 그리고 그의 집에도”라고 읽을 수 있다. 이와 동일한 문장 구조에 대한 다른 실례들은, 비록 영어 번역에서는 그렇게 인식할 수 없을지라도, 창 28:14; 민 13:23; 신 7:14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담과 하와는 안식일을 준수함으로써 그들의 창조주에 대한 믿음과 충성을 나타냈던 것과 마찬가지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생명의 유지자인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표현할 기회를 가져야 하였다. 이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은 이 나무에 초자연적인 효력을 부여하였다. 그 열매는 사망에 대한 해독제가 되고 그 잎은 생명과 불멸을 유지하는 요소가 됨으로, 인간은 그것을 먹는 한 계속해서 살게 될 것이었다.
그 나무들 중 하나는 “생명”의 나무, 문자적으로는 “그 생명”(the life) 곧 하하이임(hah.a-yyim)의 나무라고 하였다. 이 말이 형태상 복수인 사실은 그것을 추상명사를 나타내는 복수로 인식함으로써 설명되는데, 여기서 정관사는 이 나무가 “그” 생명 자체와 어떤 관련이 있으며, 다시 말해 생명은 그 나무의 열매를 사용함으로써 얻어지거나 보존될 것임을 나타낸다. 그러나 “먹기에 좋은” 동산의 다른 나무들도 생명을 유지하도록 되어 있었다. 만일 한 나무가 “생명나무”라는 특이한 이름으로 다른 나무들과 구별된다면, 그 열매도 다른 나무들의 열매와는 다르고 가치가 뛰어난 어떤 방법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이 나무의 열매를 먹는 일이 인간으로 “영생”할(3:22) 수 있게 할 것이라는 진술은 이 나무의 가치가 동산에 있는 다른 많은 유용한 나무들의 가치와는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준다.
두 번째 나무의 이름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인데,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이다. “지식”이라는 말 앞에 붙은 정관사 “그”는 그 나무가 어떤 종류의 지식이나 모든 종류의 지식을 다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과 대조된 “악”에 대한 슬픈 지식만을 제공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나무들의 이름은 중요하다. 두 경우 모두에서 “나무”라는 말은 생명과 지식이라는 추상적인 용어와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이 두 나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선언할 아무런 이유도 제공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에게 영적인 의미를 부여해 준다. “언약궤”가 성전 기구의 실제적인 한 품목이었으나, 그것도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이름을 받았다. 우리를 대신하여 구주가 흘린 속죄의 피 또한 매우 실제적인 물질이었다. 마찬가지로 그 두 나무도 성취해야 할 중요한 목적이 있는 사실적인 나무들로 간주되어야 하며, 이것들의 물질적이고 도덕적인 목적들은 그 이름에 나타난다.
2:10 강.
10~14절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 많은 학자들이 노력을 기울였으나, 홍수 후의 지표면이 이전 것과는 같은 모습이 거의 아니기 때문에 아마도 만족할 만한 설명을 결코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높은 산맥들을 융기시키고 광대한 대양을 형성하게 한 그처럼 엄청난 규모의 격변은 강과 같은 보다 약한 지표면의 특징들을 그대로 남겨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위해 영감의 말씀이 제시하는 것 외에 현재의 지표면의 모습으로 홍수 전의 지리적인 조건을 확인하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2:11 비손.
첫째 강의 이름인 비손은 성경 외의 자료에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으며, 심지어는 성경 자체에서도 이 강은 다른 곳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이 강을 인도의 인더스나 갠지스, 애굽의 나일 또는 아나톨리아에 있는 강들과 동일시하는 학자들의 견해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2:11 금이 있는 하윌라.
이와 동일한 고유 명사가 다른 본문들에서도 나타나지만, 그것은 홍수 후 시대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본문들은 2:11의 “하윌라”의 위치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2:12 베델리엄.
플리니우스에 따르면, 베델리엄은 그 원산지가 아라비아, 인도, 페르시아 및 바빌로니아인 나무로서, 투명하고 향기로운 수지(樹脂)였다. 이것이 홍수 전 시대의 베델리엄과 동일한 것이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호마노. 이것은 아마도 붉은 색깔을 띤 보석 혹은 준보석들 중의 하나였음이 틀림없다. 고대의 번역들은 호마노(onyx), 붉은 줄무늬 마노(sar-donyx), 홍옥수(sardius) 및 녹주석(beryl)으로 다양하게 번역한다. 그러므로 “호마노”란 번역이 정확한지는 확실치 않다.
2:13 기혼.
이 절과 14절에 대하여는 10절의 주석을 참조하라.
2:15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자신이 창조한 사람을 위하여 거처를 준비한 하나님은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라”는 분명한 사명과 함께 이 에덴의 가정에 그를 두었다. 이 명령은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손에서 나왔을 때 완전하였다는 사실이 경작, 곧 인간의 노동의 필요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인간은 동산을 받았을 때와 같은 완전한 상태로 그것을 보전하기 위하여 자신의 육체적 및 정신적 능력을 사용해야 하였다. 새 땅에서 육체적 노동이 삶의 즐거운 모습이 될 것이라는 사실(사 65:21~23)은 일이 저주가 되도록 의도되지 않았음을 가리킨다.
아담에게 준 동산을 “지키라”는 명령은 아마도 그가 경계하지 않으면 그에게서 그것을 앗아갈 위험이 닥칠 것이라는 숨겨진 암시일 것이다. “지키다”, 샤마르(s∨amar)라는 동사는 “경계하다”, “주시하다”, “보전하다”, “관찰하다” 그리고 “굳게 잡다”라는 뜻이다. 어떤 주석가들이 이 본문을 해석한 것처럼, 아담이 동산을 야수의 공격으로부터 지키도록 요청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확실히 합당하지 않다. 타락 이전에는 지상에서 동물들 사이에나 사람과 동물 사이에 어떤 적대감도 존재하지 않았다. 공포와 적대감은 죄의 결과이다. 그러나 인간에게서 세상의 통치권과 동산의 소유권을 강탈하려고 하는 매우 실제적인 다른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한편 동산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그것을 “다스린다”는 말과 동의어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자신의 의도를 사람에게 먼저 알리지 않고는 영향을 끼칠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보증이 있다(암 3:7). 만일 인간에게 유익한 것만을 행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의 목적을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가 이 세상을 위협하는 위험에 대하여 아담에게 알려 주었을 것임이 틀림없다(부조와 선지자, 36 52, 53).
2:16 동산 각종 나무.
이 구절과 관련된 명령은 사람이 하나님이 말한 언어와, “할지니라”와 “말지니라” 사이의 구별을 이해하였음을 전제로 한다. 그 명령은 한 나무만 제외하고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자유롭게 먹도록 허락하면서 긍정적으로 시작한다. 다른 모든 나무를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는 권리는 “먹고 또 먹을지니라”, 곧 아콜 토켈(’akol to’kel)이라는 강세형 관용구에 의해 강조되며, 이것은 하나님의 금령에도 적극적인 측면이 있음을 나타낸다.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그러므로 이 자유에 대한 제한은 훨씬 더 구체적이다. 사람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는 이름을 지닌 한 나무(9절 주석 참조)의 열매를 먹어서는 안 되었다. 이것은 계시되지 않았으므로, 그 나무가 어떤 종류의 열매를 맺었을까 하고 추측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동산에 이 나무가 있는 그 자체가 사람이 자유로운 도덕적 존재였음을 나타냈다. 인간의 봉사는 강요되지 않았다. 그는 순종할 수도 불순종할 수도 있었다. 결정은 그의 것이었다.
열매 자체는 무해(無害)했다(교육, 25). 그러나 그것을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백한 명령은 이 나무를 인간의 충성과 순종을 시험하는 근거가 되도록 구별지었다. 도덕적인 존재로서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그의 양심에 기록하였다. 그러나 그의 율법을 어떤 특별한 상황에 적용시킴으로 그 법의 원칙들을 밝혀 조물주에 대한 인간의 충성을 공정하게 시험하려는 듯이 인간에게 금령이 부과되었다. 하나님은 만물의 진정한 소유자였으며, 심지어는 아담이 위탁받아 가지고 있는 것들의 소유자였으며, 이러한 사실은 그 자신을 위하여 피조물의 어떤 부분이라도 확보해 둘 수 있는 권리를 그에게 부여하였다. 하나님이 자신을 위하여 이 세상의 많은 부분을 확보해 두고 아담에게 오직 작은 부분만을 사용하도록 허락하였다 할지라도 그것은 불합리한 것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사람은 한 나무를 제외하고는 동산에 있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이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을 금지한 것은 명백히 하나님에 대한 충성의 분명한 증거를 보이도록 하는 것 외에는 어떤 다른 목적으로도 사용되지 않았다.
2:17 네가 먹는 날에는.
이 금령을 범할 경우 심각한 형벌, 즉 죽음이 수반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형벌을 언급하고 있는 어법이 그 명령을 범한 바로 그 날에 형벌을 시행할 것을 요구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발표와 그것의 성취 사이에 중대한 모순이 있음을 본다. 그러나 “네가 먹는 날에 정녕 죽으리라”, 문자적으로 “네가 죽고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선언은 범죄한 날에 판결이 선고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사람은 조건적 불멸의 신분에서 무조건적 불멸의 상태로 옮겨갈 것이다. 타락 직전에 아담은 생명나무에 의해 그에게 허용된 불멸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파국과 더불어 발생한 그의 죽음은 매우 확실하였다. 이것이 바로 육체적 죽음이 즉각적으로 올 것이라는 사실 이상으로 그 말이 함축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사람이 원칙들을 선택할 것을 요구하였다.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 자신을 그것에 복종시키고, 그 결과로 그가 잘될 것이라고 믿든지, 아니면 자기 자신의 선택에 의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함으로 아마 그에게서 독립해야 하였다. 그러나 생명의 근원으로부터의 분리는 필연적으로 죽음만을 가져올 뿐이다. 동일한 원칙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형벌과 죽음은 인간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반역에 빠지기로 자유롭게 선택한 것에 대한 확실한 결과들이다.
2:18 돕는 배필.
즉 그의 필요에 적절한, 그를 보완해 주는 배필. 짐승들은 떼나 무리로 창조되었지만, 사람은 적적한 개인으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사람이 오랫동안 홀로 있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었다. 외로움은 인간의 복리(福利)에 손해가 될 것이므로, 하나님은 그를 위하여 반려자를 만들고자 하였다.
2:19 각종 들짐승.
어떤 주석가들이 하나님은 인간에게 반려자를 제공하기 위하여 각종 동물들을 창조함으로써 여러 가지 성공적이지 못한 시도들을 하였다고 표현한 사상은 창조 이야기 중 이 부분의 의도를 오해한 것이다. 모세가 기록한 것은 동물의 창조의 시점이 아니라 단지 그에 대한 사실이다. 「제임스왕역」에서 “지으시고”(formed)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 형태는 “지으셨다”(had formed)라고 번역하는 것이 정확하며, 따라서 그것은 다섯째 날과 여섯째 날 초반의 창조 행위를 돌이켜 보게 한다. 따라서 이 절의 첫 부분은 바로 뒤에 오는 것에 대한 머리말로 주어졌다.
2:19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은 이 동물들을 연구하고 그것들에게 적절한 이름을 부여하는 중요한 일을 수행해야 하였다. 그는 그 일을 위해서 그것들과 그것들의 습관을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이 일은 그에게 그것들을 지배할 자격을 부여하였거나 아마도 그 자격이 있음을 입증해 주었을 것이다. 동시에 그는 그것들이 누리고 있는 가족 생활에 대해서 알고 자신에게는 그 교제가 없음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동물들보다 무한히 높게 창조하였다는 사실도 인식하였으므로, 그는 그것들 중에서 반려자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만일 여자를 조성하는 일이 창조주의 목적을 충분히 충족시키는 것이었다면, 아담은 그 자신의 불완전함을 자각하고 교제의 필요성, 다시 말해 그가 홀로 남아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2:20 아담이 모든 육축…에게 이름을 주니라.
사람은 언어의 기능을 지닌 존재로 창조되었음이 분명하다. 아담은 이제 이 능력을 사용하여 자신의 동물 연구에서 이루어진 관찰을 표현하였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자연과학에 입문하게 되었으며, 동물들의 이름을 지음으로써 그것들을 다스리는 일을 시작하였다. 육축들은 그들의 미래의 관계에서 다른 동물들보다도 인간에게 더 가까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먼저 언급되었을 것이다. 사람이 좋아하는 새들, 그 중 그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될 어떤 종류의 새들은 두 번째로 열거된다. 아담과 홍수 이전의 세계가 어떤 언어를 사용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이름들이 무엇이었는지 밝혀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2:20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동물의 창조에 대한 아담의 연구는 그에게 상당한 지식을 제공하였으나 그와 동등한 다른 존재와 더불어 교제하고 싶은 그의 갈망을 충족시켜 주지는 못했다. 이러한 사실은 여자가 남자와 더불어 누려야 할 동등한 동반자 관계를 지적해 준다. 그보다 열등한 피조물 가운데서는 아담에게 어울리는 진정한 반려자를 발견할 수 없었다.
2:21 깊이 잠들게 하시니.
아담의 몸으로부터 그의 반려자를 창조하기로 계획한 하나님은 그를 마취로 인한 무의식 상태와 비교될 만큼 깊은 잠에 빠지게 하였다. 아담이 잠든 동안 하나님이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그 자리를 살로 채운 일은 사실상 외과 수술이었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 “측면”, “문짝”, (건물의) “익면”(翼面), (벽 덮개의) “판벽”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첼라(s.ela‘)가 여기서는 “갈빗대”라는 뜻을 지닌다. 「70인역」과 「불가타역」으로부터 현대어 성경에 이용된 이 전통적인 번역은 설형 문자의 기록을 통해 정확한 것으로 증명되었다. 히브리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던 앗수르어에서 갈빗대를 가리키는 말은 셀루(se∨lu)였다.
2:22 여자를 만드시고.
모세는 히브리어를 잘 구사하였으며 독자들에게 감명을 주기 위하여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알았다. 하나님의 창조 활동을 설명하기 위하여 그는 1장의 이야기에서 “창조하다”(1:27), “만들다”(1:26), “이루다”(2:7)라는 동사를 사용하였다. 이제 그는 여기에 다소간 같은 뜻의 용어인 “짓다”(to build)라는 동사를 첨가한다. 이 각각의 용어는 그 나름대로 독특한 뉘앙스를 지닌다. 아담의 갈빗대는 그의 반려자가 그것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기본적인 물질을 형성하였다. 그 여자는 남자와 더불어 분리될 수 없는 연합과 생명의 교제를 나누도록 지음을 받았으며, 그녀가 창조된 방식은 결혼에 대한 도덕적 법령을 위한 실제적인 기초를 놓는 것이어야 하였다. 여자는 “동등한 자로서 그의 곁에 서서 그의 사랑과 보호를 받아야” 하였다. 결혼은 주와 그의 교회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과 생명의 교제의 표상이다(엡 5:32).
2:22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하나님이 친히 첫 결혼식을 엄숙히 거행하였다. 여자를 만든 후, 하나님은 그 여자를 아담에게로 인도하였는데, 그는 틀림없이 그때쯤 깊은 잠에서 깨어나 있었을 것이다. 아담이 “하나님의 아들”이었던 것처럼(눅 3:38), 하와도 하나님의 딸로 불려진 것이 당연하였다. 그녀의 아버지로서 하나님은 그녀를 아담에게로 인도하였으며 그녀를 아담에게 선물하였다. 그러므로 결혼 언약이 그 신성한 제도의 창시자를 의미하는 이름인 하나님의 언약(잠 2:17)으로 불린 것은 적절하다.
2:23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아담은 그녀를 소망하던 반려자로 알아보고 자신의 신부로 기쁘게 환영하였으며 자신의 기쁨을 시적인 외침으로 표현하였다. “이는 바로”라는 표현은 그가 여자에게서 그의 마음의 소원의 성취를 보았을 때의 유쾌한 놀라움을 반영한다. 그가 세 번씩이나 반복한(히브리어 본문에서) “이것”이라는 말은 즐거움과 놀라움 가운데 그의 눈이 지금 첫사랑의 강렬한 전율을 가지고 머물고 있는 그녀를 생동감 있게 가리킨다. 본능적으로 또는 하나님의 지시의 결과로 그는 그녀가 그 자신의 일부임을 인식하였다. 그는 이제부터 그녀를 그 자신의 몸처럼 사랑해야 하였다. 왜냐하면 그녀를 사랑함으로 그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강조한다(엡 5:28).
2:23 여자라 칭하리라.
아담이 그의 새롭게 창조된 반려자에게 준 이름은 그녀가 창조된 방식을 나타내었다. “여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잇샤(’is∨-s∨ah)는 “남자”를 뜻하는 이쉬(’is∨)라는 말에 여성형 어미가 더해져 이루어진다. 영어의 “여자”(woman은 앵글로-색슨어로 wife-man이라는 뜻임)와 “남자”(man)라는 말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다른 여러 언어들에서도 마찬가지다.
2:24 부모를 떠나.
이 절의 말씀은 아담의 예언적인 발언으로 간주될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 자신의 말씀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것은 결혼 예식에서 하나님이 하신 선언의 일부이다(참조 마 19:4, 5; 산상보훈, 99). 이 말은 남자와 여자의 가장 심오한 육체적 및 영적 연합을 표현하며, 세상 앞에 일부일처제가 하나님이 정한 결혼의 형태임을 주장한다. 이 말은 자식의 의무와 부모에 대한 존경을 버릴 것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 한 남자의 아내는 근본적으로 그의 애정의 첫째가 되어야 하며, 그의 첫째 의무도 그녀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이 그의 부모에 대한 매우 당연한 사랑을 대신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지만 그것을 능가하는 것이어야 한다.
2:24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남편과 아내는 육체의 연합, 관심의 공동체, 애정의 상호성을 통해 존재하는 바, 그들의 연합은 오해할 수 없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스도가 이혼을 강력하게 정죄할 때 바로 이 문단을 사용한 사실은 의미심장하다(마 19:5).
2:25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아담과 하와는 외형적인 의복이 필요치 않았다. 왜냐하면 창조자가 그들 안에 완전하게 반영된 그분 자신의 의로운 품성을 상징하는 빛의 두루마기로 그들을 둘렀기 때문이다. 그들의 조물주의 도덕적 형상이 그의 지상의 자녀들에게서 다시 반사될 때, 그는 그들을 자신의 소유로 주장하기 위하여 다실 오실 것이다(참조 계 7:9; 19:8; 실물교훈 69, 310,). 순결의 흰 두루마기는 지상의 구원받은 자들이 낙원의 문으로 들어갈 때 입게 될 의상이다.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1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히브리어 창세기 2장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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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장 1절(창 2:1)
와예쿨루 핫솨마임 웨하아레츠 웨콜 체바암
히브리어구약BHS,1 וַיְכֻלּוּ הַשָּׁמַיִם וְהָאָרֶץ וְכָל־צְבָאָם׃
새번역,1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
우리말성경,1 그리하여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완성됐습니다.
가톨릭성경,1 이렇게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영어NIV,1 Thus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completed in all their vast array.
영어NASB,1 Thus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completed, and all their hosts.
영어MSG,1 Heaven and Earth were finished, down to the last detail.
영어NRSV,1 Thus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ir multitude.
헬라어구약Septuagint,1 και συνετελεσθησαν ο ουρανος και η γη και πας ο κοσμος αυτων
라틴어Vulgate,1 igitur perfecti sunt caeli et terra et omnis ornatus eorum
개역개정,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 천지(הַשָּׁמַיִם וְהָאָרֶץ – 핫쇠마임 웨하아레츠)
직역하면 ‘그 하늘들 그리고 그 땅'(KJV, the heavens and the earth)이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하늘이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늘을 복수로 표현했다.
* 만물(וְכָל־צְבָאָם – 웨콜 체바암)
여기서 ‘체바암’은 ‘군대'(출 6:26), ‘군중'(신 4:9)으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차바’의 복수형이다. 그런데 이 단어가 성경에서 ‘하늘의 천사들의 무리'(수 5:14, 15; 왕상 22:19)나 태양, 달, 별과 같은 천체(사 34:4; 렘 33:22; 단 8:10)를 가리키는 데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를 수식하는 ‘콜’은 ‘모든 것’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 뿐만 아니라 천사와 같은 영적 존재들 그리고 모든 천체까지도 다 만드셨다는 뜻이다.
* 다 이루니라(וַיְכֻלּוּ – 와예쿨루)
직역하면 ‘그리고 그것들이 이루었다’이다. 여기서 ‘이루다'(칼라)는 ‘준공하다'(대하 8:16), ‘성취하다'(룻 3:18), ‘마치다'(룻 2:23)란 의미가 있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단순히 중단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대로 온전히 성취하셨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과 계획을 따라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그 뜻과 계획을 따라 운행하고 계신다.
창세기 2장 2절(창 2:2)
와예칼 엘로힘 바욤 핫쉐비이 멜라크토 아쉘 아사 와이쉬보트 바욤 핫쉐비이 미콜 멜라크토 아쉘 아사
히브리어구약BHS,2 וַיְכַל אֱלֹהִים בַּיֹּום הַשְּׁבִיעִי מְלַאכְתֹּו אֲשֶׁר עָשָׂה וַיִּשְׁבֹּת בַּיֹּום הַשְּׁבִיעִי מִכָּל־מְלַאכְתֹּו אֲשֶׁר עָשָׂה׃
새번역,2 하나님은 하시던 일을 ㉠엿샛날까지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는 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 / ㉠사마리아 오경과 칠십인역과 시리아어역을 따름. 히, ‘이렛날까지’
우리말성경,2 하나님께서는 그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다 마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시던 모든 일을 마치고 일곱째 날에 쉬셨습니다.
가톨릭성경,2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영어NIV,2 By the seventh day God had finished the work he had been doing; so on the seventh day he rested from all his work.
영어NASB,2 And by the seventh day God completed His work which He had done; and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from all His work which He had done.
영어MSG,2 By the seventh day God had finished his work. On the seventh day he rested from all his work.
영어NRSV,2 And on the seventh day God finished the work that he had done, and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from all the work that he had done.
헬라어구약Septuagint,2 και συνετελεσεν ο θεος εν τη ημερα τη εκτη τα εργα αυτου α εποιησεν και κατεπαυσεν τη ημερα τη εβδομη απο παντων των εργων αυτου ων εποιησεν
라틴어Vulgate,2 conplevitque Deus die septimo opus suum quod fecerat et requievit die septimo ab universo opere quod patrarat
개역개정,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וַיְכַל אֱלֹהִים בַּיֹּום הַשְּׁבִיעִי מְלַאכְתֹּו – 와예칼 엘로힘 바욤 핫쉐비이 멜라크토)
여기서 ‘바욤’은 ‘~안에’란 의미를 지니는 전치사 ‘베’와 정관사 ‘하’가 합쳐진 ‘바’와, ‘날’을 의미하는 ‘욤’이 합쳐진 단어로 직역하면 ‘그 날 안에’라는 뜻이다. 그리고 정관사 ‘하’와 ‘일곱번째’란 의미를 지니는 서수인 ‘쉐비이’가 합쳐져 ‘핫쉐비이’가 되었다. 따라서 본문 전체를 직역하면 ‘그 일곱째 날 안에’가 된다.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마치신 날이 제 6일이었는지 제 7일이었는지에 대하여선 이견이 있다. 70인역이나 사마리아 사본은 이를 제 6일째로 번역하고 있는 반면, 대부분의 영역본(KJV, NIV, RSV)은 제 7일째로 번역하고 있다. 이같은 차이점은 히브리어 ‘예칼'(마치니)의 시제 및 어법이 불투명한데서 비롯되었는데, 우리는 이를 다음과 같이 조화시킬 수 있다.
(1)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에 대한 창조 사역을 마치신 날은 제 6일째이다. (2) 그러나 그분의 창조 사역의 완성은 이를 기념하고 축복하여 안식하신 날인 제 7일째에 온전히 성취되었다.
* 안식하시니라(וַיִּשְׁבֹּת – 와이쉬보트)
직역하면 ‘그러자 그분은 안식하셨다’이다. 여기서 ‘안식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바트’는 ‘쉬다'(출 31:17), ‘그치다'(사 14:4), ‘정지하다'(느 6:3)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이 6일간의 천지 창조 사역을 완수하고 난 후에 모든 일을 완전히 멈추시고 쉬신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6일 동안 과중한 일을 하신 후 피곤하여 쉬신 것이 아니라 계획하신 모든 일을 다 이루셨기에, 친히 창조하신 모든 것을 보시며 지극한 만족감을 가지고 안식에 들어가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이 하나님께서 전혀 아무런 행동도 하시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는 (1) 이후로 하나님께선 더 이상 새로운 피조물을 만들지 않으셨다는 것과 (2) 피조된 천지 만물의 운행을 주관하시며 그것들을 보고 기뻐하고 계셨다는 것(1:31)을 의미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안식에 근거하여 훗날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것이 바로 안식일 제도이다(출 16:29; 신 5:15). 그리고 구약 시대의 이 안식일이 신약 시대에 이르러 주일로 승화되었다(요 20:19; 행 20:7; 고전 16:2).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죄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주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일을 안식일의 완성이라고 생각하여 주일을 안식일로 지켰다. 그리고 주일에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는데 이는 안식이 그냥 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고 충전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창세기 2장 3절(창 2:3)
와예바레크 엘로힘 엩 욤 핫쉐비이 와예카데쉬 오토 키 보 솨바트 미콜 멜라크토 아쉘 바라 엘로힘 라아소트
히브리어구약BHS,3 וַיְבָרֶךְ אֱלֹהִים אֶת־יֹום הַשְּׁבִיעִי וַיְקַדֵּשׁ אֹתֹו כִּי בֹו שָׁבַת מִכָּל־מְלַאכְתֹּו אֲשֶׁר־בָּרָא אֱלֹהִים לַעֲשֹׂות׃ ף
새번역,3 이렛날에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으므로, 하나님은 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우리말성경,3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쉬셨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3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여 만드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그날에 쉬셨기 때문이다.
영어NIV,3 And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made it holy, because on it he rested from all the work of creating that he had done.
영어NASB,3 Then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sanctified it, because in it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had created and made.
영어MSG,3 God blessed the seventh day. He made it a Holy Day Because on that day he rested from his work, all the creating God had done.
영어NRSV,3 So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hallowed it, because on it God rested from all the work that he had done in creation.
헬라어구약Septuagint,3 και ηυλογησεν ο θεος την ημεραν την εβδομην και ηγιασεν αυτην οτι εν αυτη κατεπαυσεν απο παντων των εργων αυτου ων ηρξατο ο θεος ποιησαι
라틴어Vulgate,3 et benedixit diei septimo et sanctificavit illum quia in ipso cessaverat ab omni opere suo quod creavit Deus ut faceret
개역개정,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וַיְבָרֶךְ אֱלֹהִים אֶת־יֹום הַשְּׁבִיעִי וַיְקַדֵּשׁ – 와예바레크 엘로힘 엩 욤 핫쉐비이 와예카데쉬)
하나님이 일곱째 날 자체를 복되게 하셨다는 것은 이 날의 안식을 통해 피조물들에게 복을 베푸신다는 뜻이다. 즉, 안식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장차 인간에게 주어질 안식일 제도가 인간을 위한(막2:27) 복된 것임을 증거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여기서 ‘거룩하다'(카다쉬)는 ‘깨끗케 하다'(삼하 11:4), ‘구별하다'(출 27:26), ‘드리다'(대상 18:11)로도 번역될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안식하신 날을 거룩한 목적으로 특별히 구별하셨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날을 무엇보다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날로 삼아야 한다.
창세기 2장 4절(창 2:4)
엘레 톨레도트 핫솨마임 웨하아레츠 베히바레암 베욤 아소트 아도나이 엘로힘 에레츠 웨솨마임
히브리어구약BHS,4 אֵלֶּה תֹולְדֹות הַשָּׁמַיִם וְהָאָרֶץ בְּהִבָּרְאָם בְּיֹום עֲשֹׂות יְהוָה אֱלֹהִים אֶרֶץ וְשָׁמָיִם׃
새번역,4 하늘과 땅을 창조하실 때의 일은 이러하였다. 주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실 때에,
우리말성경,4 하늘과 땅이 창조됐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의 기록이 이렇습니다.
가톨릭성경,4 하늘과 땅이 창조될 때 그 생성은 이러하였다. 주 하느님께서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
영어NIV,4 This is the account of the heavens and the earth when they were created. When the LORD God made the earth and the heavens–
영어NASB,4 This is the account of the heavens and the earth when they were created, in the day that the LORD God made earth and heaven.
영어MSG,4 This is the story of how it all started, of Heaven and Earth when they were created.
영어NRSV,4 These are the generations of the heavens and the earth when they were created. In the day that the LORD God made the earth and the heavens,
헬라어구약Septuagint,4 αυτη η βιβλος γενεσεως ουρανου και γης οτε εγενετο η ημερα εποιησεν ο θεος τον ουρανον και την γην
라틴어Vulgate,4 istae generationes caeli et terrae quando creatae sunt in die quo fecit Dominus Deus caelum et terram
개역개정,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 여호와 하나님이(יְהוָה אֱלֹהִים – 아도나이 엘로힘)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처음 소개된다. ‘여호와’는 하나님께서 친히 스스로 계시하신 이름으로서(출 3:13-15) 성경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엘로힘'(하나님)은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을 강조하는 명칭이며, ‘여호와’는 스스로 계시는 초월적인 하나님, 언약을 세우시고 그 언약을 이루어가시는 구원의 하나님의 모습을 강조하는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앞의 천지창조 기사에서는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을 강조하는 ‘엘로힘’만이 쓰였으나, 이제 인간과 하나님의 언약 관계를 보여주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에 ‘여호와’라는 이름이 동시에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부르는 것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라 생각하여 금기시하던 히브리인들은 이 단어를 ‘주님’이라는 뜻을 가진 ‘아도나이’로 발음했다.
* 때에(בְּיֹום – 베욤)
여기서는 히브리어 ‘욤’이 ‘날'(day)이 아니라 특정한 ‘때'(time)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 내력이니(אֵלֶּה תֹולְדֹות – 엘레 톨레도트)
여기서 ‘엘레’는 ‘이것들'(These)이라는 의미를 가진 지시 대명사이다. ‘내력’에 해당하는 ‘톨레도트’는 ‘아이를 낳다'(4:18)란 뜻이 있는 ‘얄라드’에서 유래하여 ‘계보’, ‘출생’, ‘역사’, ‘가족’ 등과 같은 다양한 뜻을 지니고 있는데, 본절에서의 정확한 의미는 ‘역사’이다. 이는 본절 이하의 내용이 1:1-2:3에 언급된 사건을 보다 구체적으로 재묘사하는 역사적인 내용이라는 뜻이다. 즉, 창세기 1:1-2:3이 하나님의 천지창조 사역을 큰 틀에서 묘사했다면, 2:4부터는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사역을 인간을 중심으로 묘사하고 있다.
창세기 2장 5절(창 2:5)
웨콜 시아흐 핫사데 테렘 이흐예 바아레츠 웨콜 에세브 핫사데 테렘 이츠마흐 키 로 힘티르 아도나이 엘로힘 알 하아레츠 웨아담 아인 라아보드 엩 하아다마
히브리어구약BHS,5 וְכֹל שִׂיחַ הַשָּׂדֶה טֶרֶם יִהְיֶה בָאָרֶץ וְכָל־עֵשֶׂב הַשָּׂדֶה טֶרֶם יִצְמָח כִּי לֹא הִמְטִיר יְהוָה אֱלֹהִים עַל־הָאָרֶץ וְאָדָם אַיִן לַעֲבֹד אֶת־הָאֲדָמָה׃
새번역,5 주 하나님이 땅 위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땅을 갈 사람도 아직 없었으므로, 땅에는 나무가 없고, 들에는 풀 한 포기도 아직 돋아나지 않았다.
우리말성경,5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직 땅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땅을 일굴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온갖 풀이 아직 없었고 땅에는 풀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가톨릭성경,5 땅에는 아직 들의 덤불이 하나도 없고, 아직 들풀 한 포기도 돋아나지 않았다. 주 하느님께서 땅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흙을 일굴 사람도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영어NIV,5 and no shrub of the field had yet appeared on the earth and no plant of the field had yet sprung up, for the LORD God had not sent rain on the earth and there was no man to work the ground,
영어NASB,5 Now no shrub of the field was yet in the earth, and no plant of the field had yet sprouted, for the LORD God had not sent rain upon the earth; and there was no man to cultivate the ground.
영어MSG,5 At the time GOD made Earth and Heaven, before any grasses or shrubs had sprouted from the ground–GOD hadn’t yet sent rain on Earth, nor was there anyone around to work the ground
영어NRSV,5 when no plant of the field was yet in the earth and no herb of the field had yet sprung up–for the LORD God had not caused it to rain upon the earth, and there was no one to till the ground;
헬라어구약Septuagint,5 και παν χλωρον αγρου προ του γενεσθαι επι της γης και παντα χορτον αγρου προ του ανατειλαι ου γαρ εβρεξεν ο θεος επι την γην και ανθρωπος ουκ ην εργαζεσθαι την γην
라틴어Vulgate,5 et omne virgultum agri antequam oreretur in terra omnemque herbam regionis priusquam germinaret non enim pluerat Dominus Deus super terram et homo non erat qui operaretur terram
개역개정,5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 땅을 갈(לַעֲבֹד אֶת־הָאֲדָמָה – 라아보드 엩 하아다마)
하나님은 본문을 통해 사람이 땅을 갈아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갈다’의 원형 ‘아바드’가 일차적으로 ‘일하다’ (30:26; 출 5:18)란 뜻을 가지고 있지만 ‘다스리다'(2:15; 신 28:39), ‘봉사하다'(29:25; 민 18:23), ‘힘쓰다'(신 5:13)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을 착취하거나 우리의 마음대로 파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땅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열심히 관리하고 다스려야 하며,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이 구절은 창세기 1:1-2:3의 천지 창조 기사와는 일견 모순되는 듯한 구절이다. 왜냐하면 그곳에선 사람이 창조되기 이전의 셋째 날에 이미 하나님께서 각종 채소와 과목을 창조하신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1:11-13). 이는 창세기 2장의 서술 관점이 창세기 1장의 서술 관점과 다르기 때문이다. 즉, 창세기 1장이 창조 사역의 순서를 중심으로 기록된 내용이라면 창세기 2장은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 사람을 중심으로 기록된 내용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창조에 대한 세세한 설명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사람을 중심으로, 사람이 이 땅에 존재하기 이전에 지구의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창세기 2장 6절(창 2:6)
웨에드 야아레 민 하아레츠 웨히쉬카 엩 콜 페네 하아다마
히브리어구약BHS,6 וְאֵד יַעֲלֶה מִן־הָאָרֶץ וְהִשְׁקָה אֶת־כָּל־פְּנֵי־הָאֲדָמָה׃
새번역,6 땅에서 물이 솟아서, 온 땅을 적셨다.
우리말성경,6 대신 안개가 땅에서 솟아나와 온 땅을 적셨습니다.
가톨릭성경,6 그런데 땅에서 안개가 솟아올라 땅거죽을 모두 적셨다.
영어NIV,6 but streams came up from the earth and watered the whole surface of the ground–
영어NASB,6 But a mist used to rise from the earth and water the whole surface of the ground.
영어MSG,6 (the whole Earth was watered by underground springs)–
영어NRSV,6 but a stream would rise from the earth, and water the whole face of the ground–
헬라어구약Septuagint,6 πηγη δε ανεβαινεν εκ της γης και εποτιζεν παν το προσωπον της γης
라틴어Vulgate,6 sed fons ascendebat e terra inrigans universam superficiem terrae
개역개정,6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וְאֵד יַעֲלֶה מִן־הָאָרֶץ – 웨에드 야아레 민 하아레츠)
직역하면 ‘그리고 안개가 땅에서 올라오고 있었다’이다. 특히 본문에서 ‘올라와'(야아레)는 ‘피어 오르다’란 의미를 지니는 히브리어 ‘알라’의 미완료형으로 계속해서 안개가 피어 올라오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또한 ‘안개'(에드)는 땅에서 증발한 후 비가 되어 다시금 땅에 떨어지는 수증기를 의미하는 것으로(욥 36:27), 이러한 수증기는 땅에서 식물이 자랄 수 있게 해 주는 여러 가지 조건 중 하나였다.
* 적셨더라(וְהִשְׁקָה – 웨히쉬카)
직역하면 ‘그리고 그것은 적시게 하였다’이다. 여기서 ‘적시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카’는 ‘물을 대다'(신 11:10; 겔 32:6), ‘마시우다'(민 20:8; 시 60:3), ‘윤택하다'(욥 21:24)로도 번역되는 단어이다. 여기서 이 단어는 이미 동작이 끝났음을 보여 주는 완료형으로 사용되어, 땅에서 올라오는 안개가 마치 물을 대는 것과 같이, 식물이 잘 자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온 지면에 공급되고 있었음을 뜻한다.
창세기 2장 7절(창 2:7)
와이체르 아도나이 엘로힘 엩 하아담 아파르 민 하아다마 와이파흐 베아파우 니쉬마트 하임 와예히 하아담 레네페쉬 하야
히브리어구약BHS,7 וַיִּיצֶר יְהוָה אֱלֹהִים אֶת־הָאָדָם עָפָר מִן־הָאֲדָמָה וַיִּפַּח בְּאַפָּיו נִשְׁמַת חַיִּים וַיְהִי הָאָדָם לְנֶפֶשׁ חַיָּה׃
새번역,7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 ㉡히, ‘아다마’ ㉢히, ‘아담’
우리말성경,7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에서 취하신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자 사람이 생명체가 됐습니다.
가톨릭성경,7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영어NIV,7 the LORD God formed the man from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the man became a living being.
영어NASB,7 Then the LORD God formed man of dust from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being.
영어MSG,7 GOD formed Man out of dirt from the ground and blew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The Man came alive–a living soul!
영어NRSV,7 then the LORD God formed man from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the man became a living being.
헬라어구약Septuagint,7 και επλασεν ο θεος τον ανθρωπον χουν απο της γης και ενεφυσησεν εις το προσωπον αυτου πνοην ζωης και εγενετο ο ανθρωπος εις ψυχην ζωσαν
라틴어Vulgate,7 formavit igitur Dominus Deus hominem de limo terrae et inspiravit in faciem eius spiraculum vitae et factus est homo in animam viventem
개역개정,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 땅의 흙으로(עָפָר מִן־הָאֲדָמָה – 아파르 민 하아다마)
여기서 ‘땅'(아다마)은 ‘붉다'(애 4:7; 나 2:3)란 뜻이 있는 ‘아담’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땅이 붉음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표현이다. 또한 ‘흙'(아파르)은 ‘재'(민 19:17), ‘진토'(삼상 2:8), ‘가루'(왕하 23:15)로도 번역되며, 동사로 사용될 때는 ‘부스러지다'(왕상 20:10)는 뜻도 지닌다. 따라서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기가 없다면 흙과 같이 부스러지기 쉬운 보잘것 없는 존재이며 결국은 흙으로 돌아갈 존재이다.
* 사람(הָאָדָם – 하아담)
성경에서 히브리어 ‘아담’이라는 단어는 약 560회 가량 나온다. 그런데 이 단어는 본절에서와 같이 ‘사람'(man)을 뜻하기도 하고, 19절 이하에서 계속 반복되는 것과 같이 최초의 사람인 ‘아담'(Adam)이란 특정한 인물의 이름을 뜻하기도 한다.
이 단어의 어원과 거기 담긴 뜻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아담’이 ‘땅’을 의미하는 ‘아다마’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다. 이는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는 본절의 기록과 일맥 상통하며,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견해이다.
둘째, ‘만들다'(make), ‘짓다'(build)란 뜻을 지닌 앗수르어 ‘아다무’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다. 즉 아담이란 뜻은 사람이 ‘지음을 받는 존재’ 즉 피조물임을 강조하는 이름이라는 견해이다.
셋째, 히브리어 첫번째 알파벳인 ‘알렙’과 ‘물’ 혹은 세계의 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 ‘바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알파벳 ‘멤’ 그리고 두 글자 사이에 ‘중심’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알파벳 ‘달렛’을 사용하여, 처음과 끝이 의미하는 모든 피조 세상의 중심에 사람이 위치함을 보여 준다는 견해이다.
넷째, 하나님을 의미하는 ‘엘로힘’의 히브리어 알파벳 ‘알렙’과 짐승이란 뜻을 지닌 ‘베헤마’의 히브리어 알파벳 ‘멤’사이의 존재가 사람임을 보여 준다는 주장이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신적 요소를 지닌 반면 육체의 정욕대로 살 때는 짐승과 같은 존재로 타락할 수도 있다는 견해이다.
다섯째, ‘빛이 나다’라는 의미가 있는 아람어에서 유래하여 사람이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존귀한 존재임을 나타낸다는 견해이다.
여섯째, ‘결합시키다’라는 의미가 있는 아람어에서 유래하여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에서 살았던 전 인류를 하나로 결합시키는 자임을 나타낸다는 견해이다.
일곱째, ‘붉다’라는 말에서 유래하여, 사람의 피부 빛을 반영하고 있다는 견해이다.
이 중에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견해는 첫 번째 견해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견해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창세기 1:26-27절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는 전인격적인 창조에 관한 기술이라면 본문은 특별히 사람의 육신의 창조에 관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 생기를(נִשְׁמַת חַיִּים – 니쉬마트 하임)
본문의 ‘생기’는 ‘숨'(왕상 17:17), ‘호흡'(신 20:6), ‘기운'(욥 4:9), ‘영혼'(잠 20:17) 등으로도 번역되는 ‘네솨마’의 연계형 ‘니쉬마트’와 ‘살다'(23:1), ‘활발하다'(시 38:19) 등에서 유래해 ‘생명'(1:30; 신 28:66)으로 번역되는 ‘하이’의 복수형인 ‘하임’이 결합된 말이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생명들의 기운’이며, 곧 생명력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직접적인 방법으로 부여하신 ‘생기’로부터 유래되었음을 보여 주는 표현이다.
* 생령(לְנֶפֶשׁ חַיָּה – 레네페쉬 하야)
‘숨’, ‘호흡’을 뜻하는 ‘네페쉬’와 ‘생존’, ‘존재’를 의미하는 ‘하야’가 합해서 된 말로 ‘살아 있는 존재’란 뜻이다. 물론 ‘네페쉬’가 다른 곳에서 ‘혼'(Soul) 또는 ‘영혼'(Spirit)을 가리키는 뜻으로도 쓰였으나 여기서는 ‘호흡'(breath)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생령’이라는 말은 사람이 ‘영혼’을 지닌 존재임을 직접적으로 증거하는 구절은 아니다. 사람의 영혼은 오히려 1:26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란 말에 강력히 암시되어 있다. 그런데 번역 성경에서는 왜 동일한 단어를 일반 짐승을 가리킬 때는 ‘생물'(RSV, living creature)로, 사람을 가리킬 때는 ‘생령'(KJV, living soul)으로 번역했을까? 이러한 차이는 히브리어 단어 때문이 아니라 문맥의 차이를 반영하여 번역함으로써 생겨난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짐승들은 말씀을 통하여 육체와 생명을 동시에 창조하신 반면 특별히 사람만은 그 육체를 흙으로 지으시고 그 생명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있게 하셨다. 이러한 독특한 방법을 사용하여 창조된 사람은 살아 숨쉰다는 점에서 ‘네페쉬 하야’인 다른 동물들과 차이가 없으나, 하나님의 특별한 애정으로 그 형상에 따라 지음을 받았다는 점에서는 ‘생령’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이다(1:27).
창세기 2장 8절(창 2:8)
와이타 아도나이 엘로힘 간 베에덴 미케뎀 와야셈 솸 엩 하아담 아쉘 야차르
히브리어구약BHS,8 וַיִּטַּע יְהוָה אֱלֹהִים גַּן־בְּעֵדֶן מִקֶּדֶם וַיָּשֶׂם שָׁם אֶת־הָאָדָם אֲשֶׁר יָצָר׃
새번역,8 주 하나님이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을 일구시고,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우리말성경,8 여호와 하나님께서 동쪽의 에덴에 동산을 만드시고 손수 빚으신 그 사람을 거기에 두셨습니다.
가톨릭성경,8 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영어NIV,8 Now the LORD God had planted a garden in the east, in Eden; and there he put the man he had formed.
영어NASB,8 And the LORD God planted a garden toward the east, in Eden; and there He placed the man whom He had formed.
영어MSG,8 Then GOD planted a garden in Eden, in the east. He put the Man he had just made in it.
영어NRSV,8 And the LORD God planted a garden in Eden, in the east; and there he put the man whom he had formed.
헬라어구약Septuagint,8 και εφυτευσεν κυριος ο θεος παραδεισον εν εδεμ κατα ανατολας και εθετο εκει τον ανθρωπον ον επλασεν
라틴어Vulgate,8 plantaverat autem Dominus Deus paradisum voluptatis a principio in quo posuit hominem quem formaverat
개역개정,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 동방의(מִקֶּדֶם – 미케뎀)
창세기 저자의 입장에서 본 동방으로, 10-14절에 언급된 네 강의 이름과 주변 지역 및 그 산물들을 종합해서 고찰해 보면 아마도 ‘메소포타미아 지역’인 듯하다.
* 에덴에 동산을(גַּן־בְּעֵדֶן – 간 베에덴)
‘동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간’은 ‘울타리를 치다, ‘보호하다'(왕하 19:34; 사 37:35)라는 뜻이 있는 ‘까난’에서 유래하여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는 안전한 장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곳은 하나님이 구별하여 보호하시는 특별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헬라어역 성경인 70인역에서는 ‘낙원'(파라데이소스)으로 번역하고 있다.
히브리어 ‘에덴’은 ‘기쁨’이라는 뜻을 가진 우가릿어 ‘에덴’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라틴어 번역본 성경인 벌게이트(Vulgate)는 본절에 나오는 ‘에덴 동산’을 ‘파라디수스 볼룹타티스'(paradisus voluptatis), 즉 ‘기쁨의 낙원’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위하여 기쁨이 넘치는 매우 특별한 장소를 마련해 놓으셨다.
* 창설하시고(וַיִּטַּע – 와이타)
인류 최초의 거주지 에덴 동산이 특별한 장소였다는 사실은 ‘창설하다’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다. 이 단어의 원형인 히브리어 ‘나타’에는 일차적으로 나무를 ‘심다'(레 19:23; 삼하 7:10; 전 3:2), 포도원이나 정원을 ‘만들다'(신 20:6; 렘 29:5, 28) 라는 뜻이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을 창설하시되, 마치 농부가 좋은 열매를 바라며 정성껏 나무를 심듯이 또 포도원이나 정원을 만들 듯이 깊은 관심을 기울여서 만드셨음을 보여 준다.
창세기 2장 9절(창 2:9)
와야츠마흐 아도나이 엘로힘 민 하아다마 콜 에츠 네흐마드 레마르에 웨토브 레마아콜 웨에츠 하하임 베토크 학간 웨에츠 하다아트 토브 와라
히브리어구약BHS,9 וַיַּצְמַח יְהוָה אֱלֹהִים מִן־הָאֲדָמָה כָּל־עֵץ נֶחְמָד לְמַרְאֶה וְטֹוב לְמַאֲכָל וְעֵץ הַחַיִּים בְּתֹוךְ הַגָּן וְעֵץ הַדַּעַת טֹוב וָרָע׃
새번역,9 주 하나님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를 땅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우리말성경,9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보기에도 아름답고 먹기에도 좋은 온갖 나무가 땅에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동산 한가운데는 생명나무가 있었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습니다.
가톨릭성경,9 주 하느님께서는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영어NIV,9 And the LORD God made all kinds of trees grow out of the ground–trees that were pleasing to the eye and good for food. In the middle of the garden were the tree of life and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영어NASB,9 And out of the ground the LORD God caused to grow every tree that is pleasing to the sight and good for food; the tree of life also in the midst of the garden, and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영어MSG,9 GOD made all kinds of trees grow from the ground, trees beautiful to look at and good to eat. The Tree-of-Life was in the middle of the garden, also the Tree-of-Knowledge-of-Good-and-Evil.
영어NRSV,9 Out of the ground the LORD God made to grow every tree that is pleasant to the sight and good for food, the tree of life also in the midst of the garden, and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헬라어구약Septuagint,9 και εξανετειλεν ο θεος ετι εκ της γης παν ξυλον ωραιον εις ορασιν και καλον εις βρωσιν και το ξυλον της ζωης εν μεσω τω παραδεισω και το ξυλον του ειδεναι γνωστον καλου και πονηρου
라틴어Vulgate,9 produxitque Dominus Deus de humo omne lignum pulchrum visu et ad vescendum suave lignum etiam vitae in medio paradisi lignumque scientiae boni et mali
개역개정,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נֶחְמָד לְמַרְאֶה וְטֹוב לְמַאֲכָל – 네흐마드 레마르에 웨토브 레마아콜)
‘아름답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흐마드’는 단순히 보기에만 좋은 것이 아니라 ‘귀하고'(잠 21:20), ‘영화스러워서'(시 39:11), ‘흠모할'(사 53:2)만큼 ‘탐스러운'(3:6) 것까지 의미하는 다양한 뜻을 가진 ‘하마드’의 단순 재귀형(Niphal) 수동 분사이다.
‘좋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토브’는 ‘선하다'(26:29), ‘보배롭다'(왕하 20:13), ‘복되다'(욥 7:7), ‘유익하다'(전 5:11) 등으로도 번역된다. 따라서 ‘먹기에 좋다’란 의미는 단순히 맛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먹었을 때에 우리에게 매우 복되고 유익하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매우 좋은 음식을 허락하셨다.
* 생명나무(וְעֵץ הַחַיִּים – 웨에츠 하하임)
‘생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이’는 단순히 ‘생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기’, ‘활력’, ‘번영'(삼하 23:20; 삼상 25:6) 및 ‘소생'(18:10, 14; 왕하 4:16, 17)이란 뜻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람이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생명이 유지될 뿐만 아니라 생기와 활력이 넘치고 번영하며 소생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칼빈(Calvin)은 이 나무는 아담과 하와가 그 과실을 먹을 때마다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성례전적 의미를 지닌 나무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사람이 범죄한 이후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에덴 동산에서 쫓아내심으로 말미암아 이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고 영생하는 것을 막으셨다.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וְעֵץ הַדַּעַת טֹוב וָרָע – 웨에츠 하다아트 토브 와라)
여기서 ‘선'(토브)은 본절에 나오는 ‘먹기에 좋은 나무’의 ‘좋은’과 동일한 단어로서 온갖 긍정적인 것을 모두 포함하는 단어이다. 반대로 ‘악'(라)은 ‘죄악'(6:5), ‘재앙'(19:19), ‘근심'(40:7), ‘곤경'(느 2:17), ‘위험'(시 107:26) 등과 같이 다양하게 번역되는 단어로서 온갖 부정적인 것을 모두 포괄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알게'(다아트)는 ‘알다’, ‘체험하다’, ‘익숙하다’ 등의 다양한 뜻을 지니는 히브리어 ‘야다’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지식'(시 19:2; 전 1:16), ‘재능'(왕상 7:14) 등을 의미한다. 따라서 ‘선악을 알게 하는’이란 표현은 선과 악을 명확히 구별하는 지식은 물론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는 선만을 행하였으나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는 악까지 행할 재능을 지니게 됨을 보여 준다.
한편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주신 까닭은 인간이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로서, 타율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였다. 만약 이러한 자유 의지가 발휘될 수 있는 선택권이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면 인간은 잘 만들어진 로보트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자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셨기 때문에 이와 같은 선악과를 주셨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악과가 주어진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악을 행할 가능성이 있으나 자의적으로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신다.
창세기 2장 10절(창 2:10)
웨나하르 요체 메에덴 레하쉬코트 엩 학간 우밋솸 잎파레드 웨하야 레아르바아 라쉼
히브리어구약BHS,10 וְנָהָר יֹצֵא מֵעֵדֶן לְהַשְׁקֹות אֶת־הַגָּן וּמִשָּׁם יִפָּרֵד וְהָיָה לְאַרְבָּעָה רָאשִׁים׃
새번역,10 강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서 동산을 적시고, 에덴을 지나서는 네 줄기로 갈라져서 네 강을 이루었다.
우리말성경,10 강 하나가 에덴으로부터 나와서 동산을 적시고 거기로부터 갈라져 네 줄기 강의 원류가 됐습니다.
가톨릭성경,10 강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그곳에서 갈라져 네 줄기를 이루었다.
영어NIV,10 A river watering the garden flowed from Eden; from there it was separated into four headwaters.
영어NASB,10 Now a river flowed out of Eden to water the garden; and from there it divided and became four rivers.
영어MSG,10 A river flows out of Eden to water the garden and from there divides into four rivers.
영어NRSV,10 A river flows out of Eden to water the garden, and from there it divides and becomes four branches.
헬라어구약Septuagint,10 ποταμος δε εκπορευεται εξ εδεμ ποτιζειν τον παραδεισον εκειθεν αφοριζεται εις τεσσαρας αρχας
라틴어Vulgate,10 et fluvius egrediebatur de loco voluptatis ad inrigandum paradisum qui inde dividitur in quattuor capita
개역개정,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 강이…적시고(וְנָהָר … לְהַשְׁקֹות – 웨나하르 … 레하쉬코트)
직역하면 ‘그리고 강이 적시기 위하여’이다. 여기서 ‘강'(나하르)은 일차적으로 ‘시내'(시 46:4), ‘하수'(출 7:19)를 가리키지만, 많은 경우 풍요함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된다(사 48:18; 66:12). 또한 ‘적시다'(솨카) 역시 흡족할 정도로 ‘마시다'(24:46), ‘윤택하다'(욥 21:24) 등의 뜻을 지닌다. 이처럼 풍요를 상징하는 단어가 거듭 사용된 것는 그만큼 에덴 동산의 물이 풍부하여 땅이 매우 비옥했기 때문이다.
창세기 2장 11절(창 2:11)
쉠 하에하드 피숀 후 핫소베브 엩 콜 에레츠 하하윌라 아쉘 솸 핮자합
히브리어구약BHS,11 שֵׁם הָאֶחָד פִּישֹׁון הוּא הַסֹּבֵב אֵת כָּל־אֶרֶץ הַחֲוִילָה אֲשֶׁר־שָׁם הַזָּהָב׃
새번역,11 첫째 강의 이름은 비손인데, 금이 나는 하윌라 온 땅을 돌아서 흘렀다.
우리말성경,11 첫째 강의 이름은 비손인데 이 강은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굽이쳐 흘렀습니다.
가톨릭성경,11 첫째 강의 이름은 피손인데, 금이 나는 하윌라 온 땅을 돌아 흘렀다.
영어NIV,11 The name of the first is the Pishon; it winds through the entire land of Havilah, where there is gold.
영어NASB,11 The name of the first is Pishon; it flows around the whole land of Havilah, where there is gold.
영어MSG,11 The first is named Pishon; it flows through Havilah where there is gold.
영어NRSV,11 The name of the first is Pishon; it is the one that flows around the whole land of Havilah, where there is gold;
헬라어구약Septuagint,11 ονομα τω ενι φισων ουτος ο κυκλων πασαν την γην ευιλατ εκει ου εστιν το χρυσιον
라틴어Vulgate,11 nomen uni Phison ipse est qui circuit omnem terram Evilat ubi nascitur aurum
개역개정,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 비손(פִּישֹׁון – 피숀)
‘흩어지다'(나 3:18), ‘퍼지다’는 뜻이 있는 ‘푸쉬’에서 유래하여 많은 지류가 있는 강임을 암시한다. 학자에 따라 이 강이 인더스 강(Kalisch), 나일 강(Midrash), 갠지스 강(Josephus, Eusebius), 코카서스(Kaukasus)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들어가는 파시스 강(Adriaan Reland), 또는 바벨론 지역에 있는 팔라코파스 운하(Delitzsch)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 하윌라(הַחֲוִילָה – 하하윌라)
‘춤을 추다'(삿 21:21, 23), ‘소용돌이 치다’ 등의 뜻이 있는 ‘힐’에서 유래하였다. 이러한 이름은 하윌라 지역을 비손 강이 휘돌아 흐르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이곳은 본문의 내용과 같이 금과 은 및 각종 보석이 풍부하게 생산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학자에 따라 이 곳이 아라비아 인도 지역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창세기 2장 12절(창 2:12)
우자합 하아레츠 하히 토브 솸 하베돌라흐 웨에벤 핫쇼함
히브리어구약BHS,12 וּזֲהַב הָאָרֶץ הַהִוא טֹוב שָׁם הַבְּדֹלַח וְאֶבֶן הַשֹּׁהַם׃
새번역,12 그 땅에서 나는 금은 질이 좋았다. 브돌라라는 향료와 홍옥수와 같은 보석도 거기에서 나왔다.
우리말성경,12 이 땅의 금은 질이 좋고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거기 있었습니다.
가톨릭성경,12 그 땅의 금은 질이 좋았으며, 그고장에는 브델리움 향료와 마노 보석도 있었다.
영어NIV,12 (The gold of that land is good; aromatic resin and onyx are also there.)
영어NASB,12 And the gold of that land is good; the bdellium and the onyx stone are there.
영어MSG,12 The gold of this land is good. The land is also known for a sweet-scented resin and the onyx stone.
영어NRSV,12 and the gold of that land is good; bdellium and onyx stone are there.
헬라어구약Septuagint,12 το δε χρυσιον της γης εκεινης καλον και εκει εστιν ο ανθραξ και ο λιθος ο πρασινος
라틴어Vulgate,12 et aurum terrae illius optimum est ibique invenitur bdellium et lapis onychinus
개역개정,12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 순금이요(טֹוב – 토브)
원어를 직역하면 ‘그리고 그 땅의 금은 좋다’이다. 이를 약간 의역했기 때문에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순금이요’라는 글씨를 작게 썼다. 여기서 금이 좋다는 것은 금의 순도가 높다는 뜻이다.
* 베델리엄(הַבְּדֹלַח – 하베돌라흐)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본인 70인역은 이 단어를 ‘석탄’이란 뜻의 ‘안드락스’로 번역했다. 같은 단어가 민 11장 7절에도 나오는데 한글성경은 이를 ‘진주’로 번역했다. 그러나 이 단어를 ‘분리하다'(느 13:3)라는 뜻이 있는 ‘빠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면, 이는 다른 것과 구별되는 값비싼 보석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를 수지(식물 고무)로 만들어진 투명한 호박 보석으로 보고 있다.
* 호마노(הַשֹּׁהַם – 핫쇼함)
원어는 ‘창백한, ‘희미한’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희미한 녹색을 띤 ‘녹주석'(beryl) 또는 다양한 색채를 띤 ‘줄마노'(onyx) 등으로 보기도 한다. 한편, 이 보석은 후일 대제사장의 흉패 장식용 보석으로 사용되기도 했다(출 25:7). 오늘날에는 장식품이나 미술품의 재료로 사용된다.
창세기 2장 13절(창 2:13)
웨쉠 한나하르 핫쉐니 기혼 후 핫소베브 엩 콜 에레츠 쿠쉬
히브리어구약BHS,13 וְשֵׁם־הַנָּהָר הַשֵּׁנִי גִּיחֹון הוּא הַסֹּובֵב אֵת כָּל־אֶרֶץ כּוּשׁ׃
새번역,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인데, 구스 온 땅을 돌아서 흘렀다.
우리말성경,13 두 번째 강의 이름은 기혼인데 에티오피아 온 땅을 굽이쳐 흘렀습니다.
가톨릭성경,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인데, 에티오피아 온 땅을 돌아 흘렀다.
영어NIV,13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the Gihon; it winds through the entire land of Cush.
영어NASB,13 And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Gihon; it flows around the whole land of Cush.
영어MSG,13 The second river is named Gihon; it flows through the land of Cush.
영어NRSV,13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Gihon; it is the one that flows around the whole land of Cush.
헬라어구약Septuagint,13 και ονομα τω ποταμω τω δευτερω γηων ουτος ο κυκλων πασαν την γην αιθιοπιας
라틴어Vulgate,13 et nomen fluvio secundo Geon ipse est qui circuit omnem terram Aethiopiae
개역개정,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 기혼(גִּיחֹון – 기혼)
‘넘쳐 흐르다'(욥 38:8)는 뜻이 있는 히브리어 ‘끼아흐’에서 유래했다. 학자에 따라 이 강을 나일 강(Josephus, Gesenius, Kalisch)이나 카스피 해로 흘러 들어가는 수량이 풍부한 ‘아락세스 강'(Reland) 혹은 바벨론 지역에 있는 ‘샤트 엔 닐’ 운하(Delizsch) 등으로 추정하나 확실하지 않다.
* 구스(כּוּשׁ – 쿠쉬)
기혼 강에 의해 둘려진 이 구스는 아프리카 지역의 구스(에디오피아)가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구스로 추정된다.
창세기 2장 14절(창 2:14)
베쉠 한나하르 핫쉐리쉬 힏데켈 후 하호레크 키드마트 앗수르 웨한나하르 하레비이 후 페라트
히브리어구약BHS,14 וְשֵׁם הַנָּהָר הַשְּׁלִישִׁי חִדֶּקֶל הוּא הַהֹלֵךְ קִדְמַת אַשּׁוּר וְהַנָּהָר הָרְבִיעִי הוּא פְרָת׃
새번역,14 셋째 강의 이름은 티그리스인데, 앗시리아의 동쪽으로 흘렀다. 넷째 강은 유프라테스이다.
우리말성경,14 세 번째 강의 이름은 티그리스인데 앗시리아 동쪽을 끼고 흐르고 넷째 강은 유프라테스입니다.
가톨릭성경,14 셋째 강의 이름은 티그리스인데, 아시리아 동쪽으로 흘렀다. 그리고 넷째 강은 유프라테스이다.
영어NIV,14 The name of the third river is the Tigris; it runs along the east side of Asshur. And the fourth river is the Euphrates.
영어NASB,14 And the name of the third river is Tigris; it flows east of Assyria. And the fourth river is the Euphrates.
영어MSG,14 The third river is named Hiddekel and flows east of Assyria. The fourth river is the Euphrates.
영어NRSV,14 The name of the third river is Tigris, which flows east of Assyria. And the fourth river is the Euphrates.
헬라어구약Septuagint,14 και ο ποταμος ο τριτος τιγρις ουτος ο πορευομενος κατεναντι ασσυριων ο δε ποταμος ο τεταρτος ουτος ευφρατης
라틴어Vulgate,14 nomen vero fluminis tertii Tigris ipse vadit contra Assyrios fluvius autem quartus ipse est Eufrates
개역개정,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 힛데겔(חִדֶּקֶל-힏데켈)
‘티그리스'(Tigris)강을 가리키는 히브리어의 고대 명칭(단 10:4)이다. 원어는 ‘화살처럼 빨리 흐르는’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리오 왕의 비문에는 ‘티그라'(Tigra)라는 명칭으로 나타난다.
* 앗수르 동쪽(קִדְמַת אַשּׁוּר-키드마트 앗수르)
여기서 ‘동쪽’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키드마’는 ‘동쪽'(east)이란 뜻 이외에 ‘앞쪽'(forward)이란 의미도 강하다. 따라서 이 말은 ‘앗수르 앞쪽’이란 뜻으로도 볼 수 있다(Keil).
* 유브라데(פְרָת-페라트)
서아시아 최대의 강으로, 티그리스 강과 더불어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큰 영향을 끼친 강이다. 원어는 ‘잘 흘러가는’, ‘좋고 비옥한’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강이기 때문에 성경에서 단순히 ‘하수'(출 23:31; 사 7:20), ‘큰 강'(신 1:7), ‘강'(민 22:5) 등으로도 표기된다. 고대 페르시아 비문에는 ‘우프라타'(Ufrata)로 기록되어 있다.
창세기 2장 15절(창 2:15)
와이카흐 아도나이 엘로힘 엩 하아담 와얀니헤후 베간 에덴 레아브다흐 우레솨므라흐
히브리어구약BHS,15 וַיִּקַּח יְהוָה אֱלֹהִים אֶת־הָאָדָם וַיַּנִּחֵהוּ בְגַן־עֵדֶן לְעָבְדָהּ וּלְשָׁמְרָהּ׃
새번역,15 주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 곳을 맡아서 돌보게 하셨다.
우리말성경,15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 동산에 두셔서 동산을 일구고 지키게 하셨습니다.
가톨릭성경,15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 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
영어NIV,15 The LORD God took the man and put him in the Garden of Eden to work it and take care of it.
영어NASB,15 Then the LORD God took the man and put him into the garden of Eden to cultivate it and keep it.
영어MSG,15 GOD took the Man and set him down in the Garden of Eden to work the ground and keep it in order.
영어NRSV,15 The LORD God took the man and put him in the garden of Eden to till it and keep it.
헬라어구약Septuagint,15 και ελαβεν κυριος ο θεος τον ανθρωπον ον επλασεν και εθετο αυτον εν τω παραδεισω εργαζεσθαι αυτον και φυλασσειν
라틴어Vulgate,15 tulit ergo Dominus Deus hominem et posuit eum in paradiso voluptatis ut operaretur et custodiret illum
개역개정,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 그 사람(הָאָדָם-하아담)
‘아담'(사람)이란 말 앞에 정관사 ‘하’가 결합된 형태로 하나님께서 흙과 생기로 생령이 되게 하신(7절) 바로 ‘그 사람’, 곧 인류의 시조인 ‘아담'(Adam)을 가리킨다.
* 이끌어(וַיִּקַּח – 와이카흐)
이는 하나님이 아담의 손을 친히 잡고 그를 인도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아담이 하나님께서 지정해 두신 곳으로 이르도록 그의 전인격을 붙잡으시고 그의 내적, 외적 환경에 깊이 역사하셨다는 뜻이다. 이는 강압이나 억지가 아니라 그의 자발적인 의사(물론 하나님은 이 의사에 적극 개입하셨음)를 따른 것으로, 하나님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 에덴 동산에 두어(וַיַּנִּחֵהוּ בְגַן־עֵדֶן – 와얀니헤후 베간 에덴)
여기서 ‘두어’는 ‘쉬다’, ‘머물러두다’, ‘위안하다’의 히브리어 ‘야나흐’에서 유래된 말로서 외부의 침입이나 내부의 근심이 없이 절대 평안을 유지하는 가운데 살도록 아름다운 여건을 조성하시고 거하게 하셨다는 뜻이다.
* 경작하며(לְעָבְדָהּ – 레아브다흐)
‘아바드'(일하다, 경작하다, 봉사하다)의 단순 부정사로 아담이 평생 해야하는 일이 땅을 중심으로 한 노동이었음을 시사한다. 여기서 노동의 원래 목적은 생계의 유지가 아니라 자연과 세계를 관리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노동(직업)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사명이라는 의식을 가질 때 고귀하며 의미가 있다.
* 지키게 하시고(וּלְשָׁמְרָהּ – 우레솨므라흐)
어근인 ‘솨마르’는 ‘울타리를 치다’, ‘보존하다’, ‘주의를 기울이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손상 없이 보존할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를 아끼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혹자는 이를 근거로 그 당시 하나님의 동산을 해칠 만한 악한 존재가 이미 나타났다고 주장하나 설득력이 없다. 한편 본절은 창세기 1:28에서 주어진 것과 동일한 ‘문화 명령'(cultural mandate)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의 권한을 위임하시고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관할하도록 위탁하셨다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인간은 만물의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로서 세상을 정복하고 다시르고 문화를 꽃피움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 드러낼 책임이 있다.
창세기 2장 16절(창 2:16)
와예차우 아도나이 엘로힘 알 하아담 레모르 밐콜 에츠 학간 아콜 토켈
히브리어구약BHS,16 וַיְצַו יְהוָה אֱלֹהִים עַל־הָאָדָם לֵאמֹר מִכֹּל עֵץ־הַגָּן אָכֹל תֹּאכֵל׃
새번역,16 주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셨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우리말성경,16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명령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 동산의 각종 나무의 열매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
가톨릭성경,16 그리고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영어NIV,16 And the LORD God commanded the man, “You are free to eat from any tree in the garden;
영어NASB,16 And the LORD God commanded the man, saying, “From any tree of the garden you may eat freely;
영어MSG,16 GOD commanded the Man, “You can eat from any tree in the garden,
영어NRSV,16 And the LORD God commanded the man, “You may freely eat of every tree of the garden;
헬라어구약Septuagint,16 και ενετειλατο κυριος ο θεος τω αδαμ λεγων απο παντος ξυλου του εν τω παραδεισω βρωσει φαγη
라틴어Vulgate,16 praecepitque ei dicens ex omni ligno paradisi comede
개역개정,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 명하여(וַיְצַו – 와예차우)
‘차와'(명령하다, 지정하다, 맡기다)의 미래 강조형으로 본절에 제시된 명령을 앞으로 거역하거나 불순종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임의로 먹되(אָכֹל תֹּאכֵל – 아콜 토켈)
문자적으로는 ‘먹고 싶은 대로 먹되’, ‘자유롭게 섭취하되’란 뜻이다. 이 말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모든 음식물 뿐만 아니라 ‘생명나무'(9절)의 실과까지도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완전한 특권과 자유를 주셨다는 뜻이다.
창세기 2장 17절(창 2:17)
우메에츠 하다아트 토브 와라 로 토칼 밈멘누 키 베욤 아칼레카 밈멘누 모트 타무트
히브리어구약BHS,17 וּמֵעֵץ הַדַּעַת טֹוב וָרָע לֹא תֹאכַל מִמֶּנּוּ כִּי בְּיֹום אֲכָלְךָ מִמֶּנּוּ מֹות תָּמוּת׃
새번역,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우리말성경,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마라.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다.”
가톨릭성경,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영어NIV,17 but you must not eat from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for when you eat of it you will surely die.”
영어NASB,17 but from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you shall not eat, for in the day that you eat from it you shall surely die. ”
영어MSG,17 except from the Tree-of-Knowledge-of-Good-and-Evil. Don’t eat from it. The moment you eat from that tree, you’re dead.”
영어NRSV,17 bu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you shall not eat, for in the day that you eat of it you shall die.”
헬라어구약Septuagint,17 απο δε του ξυλου του γινωσκειν καλον και πονηρον ου φαγεσθε απ’ αυτου η δ’ αν ημερα φαγητε απ’ αυτου θανατω αποθανεισθε
라틴어Vulgate,17 de ligno autem scientiae boni et mali ne comedas in quocumque enim die comederis ex eo morte morieris
개역개정,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 먹지 말라(לֹא תֹאכַל – 로 토칼)
이는 단순 부정으로서 결코 먹어서는 안된다는 강한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만물을 다스리고 지키는 특권과 동산의 각종 열매를 임의로 먹는 자유가 주어진 인간에게 단 한가지 금지 명령이 엄숙한 경고와 함께 주어졌다. 그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곧 선악과(善惡果)를 먹지 말라는 것이요, 만일 명령을 어기고 그것을 먹게 될 경우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내용이었다. 반면 이러한 내용을 역으로 생각하면, 만일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선악과를 먹지 않으면 영원토록 생명을 누리리라는 내용이기도 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 말씀은 본질상 계약적 형태를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Bavinck). 이를 신학적 용어로 ‘행위 언약’이라 칭한다. 측 선악과를 ‘먹느냐’ 혹은 ‘먹지 않느냐’라는 인간의 행위 여부에 따라 죽음과 영생이 결정되는 언약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은 죽음 또는 영생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결코 열매 자체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혹은 불순종하고자 하는 인간 내면의 ‘자유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이다. 한편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선악과와 이를 통한 행위 언약의 법을 주신 근본 목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에게 그 자유 의지를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활용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였다. 즉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의지를 결정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게 함으로써 스스로 전인격적 독립체가 되도록 하셨던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이런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이 스스로 당신을 섬기며 교제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선악과를 대상으로 하여 맺은 행위 언약의 목적은 결코 인간을 속박하고자 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함으로써 인간이 그 말씀에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법을 깨달아 진정한 자유와 기쁨올 누리도록 하려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 네가 먹는 날에는(בְּיֹום אֲכָלְךָ מִמֶּנּוּ – 베욤 아칼레카 밈멘누)
여기서 ‘날’이란 말에는 전치사 ‘베’가 붙어 ‘바로 그날 안에’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이는 명령 거부에 대한 하나님의 단호하고도 엄정한 심판의 확실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 정녕 죽으리라(מֹות תָּמוּת – 모트 타무트)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준 ‘절대 명령’이자 인간과 맺은 최초의 행위 언약이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임을 깨우쳐 주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역설적으로 그 말씀에 순종하면 영원히 살리라는 약속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언약(호 6:7)이다.
창세기 2장 18절(창 2:18)
와요메르 아도나이 엘로힘 로 토브 헤요트 하아담 레바도 에에세흐 로 에제르 케네그도
히브리어구약BHS,18 וַיֹּאמֶר יְהוָה אֱלֹהִים לֹא־טֹוב הֱיֹות הָאָדָם לְבַדֹּו אֶעֱשֶׂהּ־לֹּו עֵזֶר כְּנֶגְדֹּו׃
새번역,18 주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를 돕는 사람, 곧 그에게 알맞은 짝을 만들어 주겠다.”
우리말성경,18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내가 그에게 알맞은 돕는 사람을 만들어 주겠다.”
가톨릭성경,18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
영어NIV,18 The LORD God said, “It is not good for the man to be alone. I will make a helper suitable for him.”
영어NASB,18 Then the LORD God said, “It is not good for the man to be alone; I will make him a helper suitable for him.”
영어MSG,18 GOD said, “It’s not good for the Man to be alone; I’ll make him a helper, a companion.”
영어NRSV,18 Then the LORD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 helper as his partner.”
헬라어구약Septuagint,18 και ειπεν κυριος ο θεος ου καλον ειναι τον ανθρωπον μονον ποιησωμεν αυτω βοηθον κατ’ αυτον
라틴어Vulgate,18 dixit quoque Dominus Deus non est bonum esse hominem solum faciamus ei adiutorium similem sui
개역개정,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לֹא־טֹוב הֱיֹות הָאָדָם לְבַדֹּו – 로 토브 헤요트 하아담 레바도)
이 말씀은 분명히 1:31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하나님의 최종 평가가 있기 전의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즉 본문은 인간의 자연 발생적인 고독과 완전한 만족의 결핍을 나타내 보인 것으로, 하나님의 편에서 볼 때 아직 창조 사역을 완성하기 전의 상태를 나타내 주고 있다. 실로 하나님은 인간의 아직 채워지지 않은 내적 갈망을 만족시킬 ‘돕는 배필’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Yates). 그리고 여기서 ‘좋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토브’는 상대적으로 ‘더 낫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하신 뜻을 좇아 지으신 피조물 중에 보시기에 좋지 못한 것은 본래 하나도 없었다(1:31). 따라서 이 말은 다만 아담이 혼자 지내는 것보다 하와와 함께 거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낫다는 의미이다.
* 돕는 배필(עֵזֶר כְּנֶגְדֹּו – 에제르 케네그도)
‘조력자’, ‘반려자’, ‘응답하는 자'(one who answers)라는 뜻으로, 곧 성품과 신분에 있어서 남자와 같고 언제나 그 곁에 살면서 상호 위로와 기쁨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동시에 이 말은 남편과 책임을 나눠 지며, 이해와 사랑으로써 남편의 본성에 대응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받들어 섬기는 데 남편과 혼연일체가 되어 협조하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란 의미도 지닌다. 더불어 남편에 대한 아내의 역할을 암시하는 말로, 곧 아내의 일반적 기능이 ‘조력’에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말이 남성 우위론의 근거로 오용(誤用)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남녀의 차이는 신체적, 기능적 차이이지 인격적 차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남자든 여자든 다 그분의 성품을 함께 나눠 받은 동등한 인격체일 뿐이다(고전 11:11).
창세기 2장 19절(창 2:19)
와이첼 아도나이 엘로힘 민 하아다마 콜 하야트 핫사데 웨에트 콜 오프 핫솨마임 와야베 엘 하아담 릴오트 마 이크라 로 웨콜 아쉘 이크라 로 하아담 네페쉬 하야 후 쉐모
히브리어구약BHS,19 וַיִּצֶר יְהוָה אֱלֹהִים מִן־הָאֲדָמָה כָּל־חַיַּת הַשָּׂדֶה וְאֵת כָּל־עֹוף הַשָּׁמַיִם וַיָּבֵא אֶל־הָאָדָם לִרְאֹות מַה־יִּקְרָא־לֹו וְכֹל אֲשֶׁר יִקְרָא־לֹו הָאָדָם נֶפֶשׁ חַיָּה הוּא שְׁמֹו׃
새번역,19 주 하나님이 들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를 흙으로 빚어서 만드시고, 그 사람에게로 이끌고 오셔서, 그 사람이 그것들을 무엇이라고 하는지를 보셨다. 그 사람이 살아 있는 동물 하나하나를 이르는 것이 그대로 동물들의 이름이 되었다.
우리말성경,19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흙으로 온갖 들짐승들과 공중의 온갖 새들을 다 빚으시고 그것들을 아담에게로 데려오셔서 그가 어떻게 이름을 짓는지 보셨습니다. 아담이 각 생물을 무엇이라 부르든지 그것이 그의 이름이 됐습니다.
가톨릭성경,19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흙으로 들의 온갖 짐승과 하늘의 온갖 새를 빚으신 다음, 사람에게 데려가시어 그가 그것들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보셨다. 사람이 생물 하나하나를 부르는 그대로 그 이름이 되었다.
영어NIV,19 Now the LORD God had formed out of the ground all the beasts of the field and all the birds of the air. He brought them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name them; and whatever the man called each living creature, that was its name.
영어NASB,19 And out of the ground the LORD God formed every beast of the field and every bird of the sky, and brought them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call them; and whatever the man called a living creature, that was its name.
영어MSG,19 So GOD formed from the dirt of the ground all the animals of the field and all the birds of the air. He brought them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name them. Whatever the Man called each living creature, that was its name.
영어NRSV,19 So out of the ground the LORD God formed every animal of the field and every bird of the air, and brought them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call them; and whatever the man called every living creature, that was its name.
헬라어구약Septuagint,19 και επλασεν ο θεος ετι εκ της γης παντα τα θηρια του αγρου και παντα τα πετεινα του ουρανου και ηγαγεν αυτα προς τον αδαμ ιδειν τι καλεσει αυτα και παν ο εαν εκαλεσεν αυτο αδαμ ψυχην ζωσαν τουτο ονομα αυτου
라틴어Vulgate,19 formatis igitur Dominus Deus de humo cunctis animantibus terrae et universis volatilibus caeli adduxit ea ad Adam ut videret quid vocaret ea omne enim quod vocavit Adam animae viventis ipsum est nomen eius
개역개정,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지으시고(וַיִּצֶר יְהוָה אֱלֹהִים מִן־הָאֲדָמָה – 와이첼 아도나이 엘로힘 민 하아다마)
본절은 ‘말씀으로’ 모든 생물을 창조하셨다는 1장의 창조 기사와 모순되는 듯 보이나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2장은 1장의 기사를 필요한 부분에 따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 장으로서, 본절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창조적 능력의 말씀으로’ 각종 들짐승과 새와 물고기와 인간을 창조하시되 그 몸의 구성 성분을 흙으로 이루어지게 하신 것이다. 따라서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것들은 ‘흙으로’ 지음 받은 존재와 다름이 없다. 그러나 짐승에게는 하나님의 생기 즉 영혼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7절).
창세기 2장 20절(창 2:20)
와이크라 하아담 쉐모트 레콜 하베헤마 울오프 핫솨마임 울콜 하야트 핫사데 울아담 로 마차 에젤 케네그도
히브리어구약BHS,20 וַיִּקְרָא הָאָדָם שֵׁמֹות לְכָל־הַבְּהֵמָה וּלְעֹוף הַשָּׁמַיִם וּלְכֹל חַיַּת הַשָּׂדֶה וּלְאָדָם לֹא־מָצָא עֵזֶר כְּנֶגְדֹּו׃
새번역,20 그 사람이 모든 집짐승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그 ㉣남자를 돕는 사람 곧 그의 짝이 없었다. / ㉣히, ‘아담’
우리말성경,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모든 들짐승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자기에게 알맞은 돕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가톨릭성경,20 이렇게 사람은 모든 집짐승과 하늘의 새와 모든 들짐승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인 자기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찾지 못하였다.
영어NIV,20 So the man gave names to all the livestock, the birds of the air and all the beasts of the field. But for Adam no suitable helper was found.
영어NASB,20 And the man gave names to all the cattle, and to the birds of the sky, and to every beast of the field, but for Adam there was not found a helper suitable for him.
영어MSG,20 The Man named the cattle, named the birds of the air, named the wild animals; but he didn’t find a suitable companion.
영어NRSV,20 The man gave names to all cattle, and to the birds of the air, and to every animal of the field; but for the man there was not found a helper as his partner.
헬라어구약Septuagint,20 και εκαλεσεν αδαμ ονοματα πασιν τοις κτηνεσιν και πασι τοις πετεινοις του ουρανου και πασι τοις θηριοις του αγρου τω δε αδαμ ουχ ευρεθη βοηθος ομοιος αυτω
라틴어Vulgate,20 appellavitque Adam nominibus suis cuncta animantia et universa volatilia caeli et omnes bestias terrae Adam vero non inveniebatur adiutor similis eius
개역개정,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 아담이 이름을 주니라(וַיִּקְרָא הָאָדָם שֵׁמֹות – 와이크라 하아담 쉐모트)
‘이름을 짓다’, ‘이름을 부르다’, ‘이름을 공포하다’는 뜻이다. 고대 히브리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그에 대한 소유권이나 종주권(宗主權)을 나타내는 행위였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이 직접 피조물의 이름을 짓지 않으시고 그 권한을 아담에게 위임한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 다른 만물보다 뛰어난 존재임을 인정해주시는 사건이다. 실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된 인간은 각종 동물들에게 적절하고도 합리적인 이름을 부여할 만큼 통찰력이 뛰어났다.
창세기 2장 21절(창 2:21)
와야펠 아도나이 엘로힘 타르데마 알 하아담 와이솬 와이카흐 아하트 미찰오타우 와이스고르 바사르 타흐텐나
히브리어구약BHS,21 וַיַּפֵּל יְהוָה אֱלֹהִים תַּרְדֵּמָה עַל־הָאָדָם וַיִּישָׁן וַיִּקַּח אַחַת מִצַּלְעֹתָיו וַיִּסְגֹּר בָּשָׂר תַּחְתֶּנָּה׃
새번역,21 그래서 주 하나님이 그 남자를 깊이 잠들게 하셨다. 그가 잠든 사이에, 주 하나님이 그 남자의 갈빗대 하나를 뽑고, 그 자리는 살로 메우셨다.
우리말성경,21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하시니 그가 잠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갈비뼈 하나를 취하시고 살로 대신 채우셨습니다.
가톨릭성경,21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게 하시어 그를 잠들게 하신 다음, 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내시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셨다.
영어NIV,21 So the LORD God caused the man to fall into a deep sleep; and while he was sleeping, he took one of the man’s ribs and closed up the place with flesh.
영어NASB,21 So the LORD God caused a deep sleep to fall upon the man, and he slept; then He took one of his ribs, and closed up the flesh at that place.
영어MSG,21 GOD put the Man into a deep sleep. As he slept he removed one of his ribs and replaced it with flesh.
영어NRSV,21 So the LORD God caused a deep sleep to fall upon the man, and he slept; then he took one of his ribs and closed up its place with flesh.
헬라어구약Septuagint,21 και επεβαλεν ο θεος εκστασιν επι τον αδαμ και υπνωσεν και ελαβεν μιαν των πλευρων αυτου και ανεπληρωσεν σαρκα αντ’ αυτης
라틴어Vulgate,21 inmisit ergo Dominus Deus soporem in Adam cumque obdormisset tulit unam de costis eius et replevit carnem pro ea
개역개정,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 깊이 잠들게(תַּרְדֵּמָה – 타르데마)
황홀경에 빠지거나 환상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깊은 잠에 든 것을 뜻한다(욥 4:13). 이는 아담이 자연적인 수면에 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초자연적인 깊은 잠에 들었음을 의미한다.
* 갈빗대(מִצַּלְעֹתָיו – 미찰오타우)
‘구부러지다’란 뜻의 히브리어 ‘찰라’에서 파생된 말로, 직역하면 ‘구부러진 것’이란 의미이다. 이외에도 이 단어는 성경 용례상 ‘갈빗대’란 뜻과 함께 ‘한쪽 편’이란 뜻도 지닌다. 그래서 혹자는 이에 근거해 아담은 본래 남녀 양성을 지녔었는데 하나님께서 여성을 따로 떼어내셨을 것으로 추정한다(Obbink). 그러나 그 같은 견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남자'(자카르)와 ‘여자'(네케바)로 각기 구별하여 창조하셨다는 창 1장 27절의 기사와,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라는 딤전 2장 13절의 말씀과 상충되는 주장으로 타당하지 못하다.
창세기 2장 22절(창 2:22)
와이벤 아도나이 엘로힘 엩 하체라 아쉘 라카흐 민 하아담 레잇솨 와예비에하 엘 하아담
히브리어구약BHS,22 וַיִּבֶן יְהוָה אֱלֹהִים אֶת־הַצֵּלָע אֲשֶׁר־לָקַח מִן־הָאָדָם לְאִשָּׁה וַיְבִאֶהָ אֶל־הָאָדָם׃
새번역,22 주 하나님이 남자에게서 뽑아 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여자를 남자에게로 데리고 오셨다.
우리말성경,22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서 취하신 갈비뼈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녀를 아담에게 데려오셨습니다.
가톨릭성경,22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데려오시자,
영어NIV,22 Then the LORD God made a woman from the rib he had taken out of the man, and he brought her to the man.
영어NASB,22 And the LORD God fashioned into a woman the rib which He had taken from the man, and brought her to the man.
영어MSG,22 GOD then used the rib that he had taken from the Man to make Woman and presented her to the Man.
영어NRSV,22 And the rib that the LORD God had taken from the man he made into a woman and brought her to the man.
헬라어구약Septuagint,22 και ωκοδομησεν κυριος ο θεος την πλευραν ην ελαβεν απο του αδαμ εις γυναικα και ηγαγεν αυτην προς τον αδαμ
라틴어Vulgate,22 et aedificavit Dominus Deus costam quam tulerat de Adam in mulierem et adduxit eam ad Adam
개역개정,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 여호와 하나님이… 그 갈빗대로… 만드시고(וַיִּבֶן יְהוָה אֱלֹהִים אֶת־הַצֵּלָע – 와이벤 아도나이 엘로힘 엩 하체라)
하나님께서 많은 부분 중에서 특별히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지으신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1) 남자의 옆구리 부분에서 취하여 만든 것은 남자와 여자가 인격적으로 상호 동등한 위치에 있음을 보여 준다(고전 11:11, 12). 곧 하나님께서는 여자가 남자에게 짓밟히지 않도록 다리뼈로 여자를 만들지 않으셨다. 반면 여자가 남자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머리뼈로 만들지도 않으셨다(Matthew Henry). (2)남녀는 상호 불가분의 존재로서 특히 여자는 남자에게서 소중히 여김을 받을 위치에 있음을 보여 준다(엡 5:25-33). 곧 하나님께서는 보호함을 받도록 팔 밑에서 취했으며, 사랑을 받도록 가슴 근처에서 갈빗대를 취하사 여자를 만드셨던 것이다(벧전 3:7). 이로 인하여 여자는 남자에 의지해야 하는 필연성을 지니게 되었으며 남자를 떠나서는 결코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없는 의존적 존재가 되었다. 더불어 남자 역시 잃어버린 갈빗대인 여자를 떠나서는 완전치 못한 존재가 되었다. 따라서 두 독립체는 하나로 결합함으로써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있게 되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마침내 창조의 기쁨과 영광이 온전한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Yates). 한편, 여기서 아담은 장차 둘째 아담으로 오실 신랑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고 여자 하와는 그의 신부인 교회를 예표한다(엡 5:32). 즉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의 옆구리로부터 흘러내린 십자가 상의 물과 피로 말미암아 신부되는 교회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상에서 죽음과도 같은 깊은 잠에 취하게 하사 그의 옆구리로부터 흘러내린 대속의 물과 피로(요 19:34) 그의 배필되는 신부 교회를 만드셨던 것이다(엡 5:26).
*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וַיְבִאֶהָ אֶל־הָאָדָם – 와예비에하 엘 하아담)
이는 마치 신부의 아버지가 곱게 키운 딸을 신랑에게 넘겨주기 위해 식장 안으로 들어가는 엄숙하고도 아름다운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로써 하나님은 신성한 결혼 제도의 창시자요 주관자로 자신을 계시하셨다(Bush).
창세기 2장 23절(창 2:23)
와요멜 하아담 조트 하파암 에쳄 메아차마이 우바사르 미베사리 레조트 잌카레 잇솨 키 메이쉬 루카하 조트
히브리어구약BHS,23 וַיֹּאמֶר הָאָדָם זֹאת הַפַּעַם עֶצֶם מֵעֲצָמַי וּבָשָׂר מִבְּשָׂרִי לְזֹאת יִקָּרֵא אִשָּׁה כִּי מֵאִישׁ לֻקֳחָה־זֹּאת׃
새번역,23 그 때에 그 남자가 말하였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 / ㉤히, ‘이쉬’ ㉥히, ‘잇샤’
우리말성경,23 아담이 말했습니다. “드디어 내 뼈 가운데 뼈요 내 살 가운데 살이 나타났구나. 이가 남자에게서 취해졌으니 여자라고 불릴 것이다.”
가톨릭성경,23 사람이 이렇게 부르짖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영어NIV,23 The man said, “This is now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she shall be called ‘woman,’ for she was taken out of man.”
영어NASB,23 And the man said, “This is now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She shall be called Woman, Because she was taken out of Man.”
영어MSG,23 The Man said, “Finally! Bone of my bone, flesh of my flesh! Name her Woman for she was made from Man.”
영어NRSV,23 Then the man said, “This at last is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this one shall be called Woman, for out of Man this one was taken.”
헬라어구약Septuagint,23 και ειπεν αδαμ τουτο νυν οστουν εκ των οστεων μου και σαρξ εκ της σαρκος μου αυτη κληθησεται γυνη οτι εκ του ανδρος αυτης ελημφθη αυτη
라틴어Vulgate,23 dixitque Adam hoc nunc
os ex ossibus meis et caro de carne mea haec vocabitur virago quoniam de viro sumpta est
개역개정,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זֹאת הַפַּעַם עֶצֶם מֵעֲצָמַי וּבָשָׂר מִבְּשָׂרִי – 조트 하파암 에쳄 메아차마이 우바사르 미베사리)
잠에서 깨어난 아담이 하나님께 인도되어 오는 여자를 보고, 즉각 그 여자가 자신의 뼈와 살로 지음받은 존재임을 노래하는 장면으로, 곧 배필을 맞이 하는 남자의 지극한 기쁨이 반복과 대구(對句)를 통하여 표현된 아담의 감격시요 감사와 찬양의 노래이다.
* 여자라 칭하리라(יִקָּרֵא אִשָּׁה – 잌카레 잇솨)
‘여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솨’는 ‘남자’를 뜻하는 ‘이쉬’에서 파생된 말이다. 이는 어원적으로도 여자는 남자의 뼈와 살로 지음받은 사실을 시사해 준다. 결국 이것은 남자와 여자는 상호 결합되어 있는 불가분의 존재로서, 본질상 하등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교훈해 준다. 단지 질서와 기능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구별될 뿐이다. 그리고 이 단어는 여자와 남자가 구별된 존재임을 강조하는 ‘네케바'(1:27)와는 달리 여자란 남자에게서 유래(由來)된 존재임을 강조하는 단어이다.
창세기 2장 24절(창 2:24)
알 켄 야아좁 이쉬 엩 아비우 웨엩 임모 웨다바크 베이쉬토 웨하이우 레바사르 에하드
히브리어구약BHS,24 עַל־כֵּן יַעֲזָב־אִישׁ אֶת־אָבִיו וְאֶת־אִמֹּו וְדָבַק בְּאִשְׁתֹּו וְהָיוּ לְבָשָׂר אֶחָד׃
새번역,24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말성경,24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그 아내와 결합해 한 몸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가톨릭성경,24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영어NIV,24 For this reason a man will leave his father and mother and be united to his wife, and they will become one flesh.
영어NASB,24 For this cause a man shall leave his father and his mother, and shall cleave to his wife; and they shall become one flesh.
영어MSG,24 Therefore a man leaves his father and mother and embraces his wife. They become one flesh.
영어NRSV,24 Therefore a man leaves his father and his mother and clings to his wife, and they become one flesh.
헬라어구약Septuagint,24 ενεκεν τουτου καταλειψει ανθρωπος τον πατερα αυτου και την μητερα αυτου και προσκολληθησεται προς την γυναικα αυτου και εσονται οι δυο εις σαρκα μιαν
라틴어Vulgate,24 quam ob rem relinquet homo patrem suum et matrem et adherebit uxori suae et erunt duo in carne una
개역개정,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 떠나… 합하여… 이룰지로다
결혼 제도의 창시자요 최초 결혼 예식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의 주례사(主禮輪)와도 같은 말씀이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결혼의 대 원리를 찾아 볼 수 있다. 즉, (1) 육체적 · 인격적으로 책임있는 존재로서 이제 상호 부모로부터 홀로 서는 ‘독립성’. 이는 혈연의 완전한 단절을 뜻하지 않는다. 오직 사랑과 성숙과 편의와 경제와 거주의 관점에서의 떨어짐을 가리킨다(Whitelaw). (2) 동등하고 유기적인 두 인격체가 상호 협력함으로 같은 뜻을 이루는 ‘연합성’. 이는 상호 이해와 신뢰와 인정과 인내와 헌신을 바탕으로 할 때 가능하다. 이런 사람은 강하며 생명력이 있다. (3) 구별된 두 존재가 성숙한 사랑과 이해로서 영육간에 하나되는 ‘일체성’. 이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만큼의 강한 결집력을 암시한다(마 19:6). 한편 안식일과 더불어 인류 타락 전에 주어진 현재 상태대로의 결혼 제도는 장차 신약 시대에 신랑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보혈로 형성된 신부 교회간의 연합과 일체를 예표하고 있는 사랑과 생명의 제도요 계시적 비밀이다(엡 5:31, 32).
창세기 2장 25절(창 2:25)
와이흐이우 쉬네헴 아룸밈 하아담 웨이쉬토 웨로 이트보솨슈
히브리어구약BHS,25 וַיִּהְיוּ שְׁנֵיהֶם עֲרוּמִּים הָאָדָם וְאִשְׁתֹּו וְלֹא יִתְבֹּשָׁשׁוּ׃
새번역,25 남자와 그 아내가 둘 다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우리말성경,25 아담과 그의 아내가 둘 다 벌거벗었지만 서로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가톨릭성경,25 사람과 그 아내는 둘 다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영어NIV,25 The man and his wife were both naked, and they felt no shame.
영어NASB,25 And the man and his wife were both naked and were not ashamed.
영어MSG,25 The two of them, the Man and his Wife, were naked, but they felt no shame.
영어NRSV,25 And the man and his wife were both naked, and were not ashamed.
헬라어구약Septuagint,25 και ησαν οι δυο γυμνοι ο τε αδαμ και η γυνη αυτου και ουκ ησχυνοντο
라틴어Vulgate,25 erant autem uterque nudi Adam scilicet et uxor eius et non erubescebant
개역개정,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태초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는 서로 나체였으나 부끄러움을 몰랐다. 이것은 혹자들(Knobel, Kalisch)의 견해처럼 그들의 도덕적 상태가 미숙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무죄 시대의 특징으로서, 곧 타락 전 하나님의 거룩한 영의 형상으로서 온전히 창조된 아담과 하와의 순결한 영육은 부끄러움을 몰랐다(Keil). 부끄러움, 곧 수치심은 타락과 더불어 곧 느끼게 되었는데(3:7, 10), 이는 하나님의 명령(16, 17절)을 어기고 육체적 충동과 감각적 소욕을 쫓아 금지된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써 순결한 인간의 영육 상태가 오염되고 파괴된 결과로서 파생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부끄러움'(부솨)은 인간 타락의 결과로서 원초적 성결의 상실감에서 오는 부자연스럽고 불안정한 정신 상태의 한 양상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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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장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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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장 강해
창세기 2장은 연대기적으로 역순 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창조는 창조 6일째 이기에 초반부의 안식일은 7일째이므로 하루 전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1장에서 사람의 창조에 대해 못다 한 이야기를 2장에서 구체적으로 서술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2장은 앞으로 전개될 3장의 타락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남자의 소명은 에덴동산을 경작하고 지키는 일이었지만 남자를 돕기 위해 창조된 여성이 남자의 사명을 망가뜨리고 맙니다. 최초의 반창조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시작은 매우 좋았습니다.
1-2절 안식일의 제정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만드신 다음 안식하십니다. 안식일은 창조의 완성이자 창조의 목적입니다. 안식일 제정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습
다 이루어졌다.
2:1은 ‘끝났다’로 시작합니다. 동사를 가장 앞으로 둠으로 하나님의 창조 행위가 그쳤음을 말합니다. 천지는 두 단어로 그 하늘들과 그 땅입니다. 히브리인들은 하늘을 늘 복수 형태로 소개합니다.
바에켈루 하샤마임 베하에레쯔 베칼 체바암
끝났다. 그 하늘들 그 땅 모든 그것들
2절은 ‘일곱째 날에 마쳤다’라고 말합니다. 일곱째 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창조가 일곱째 날에 끝났음을 말합니다. 즉 일곱날에 완성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십니다. 이것은 굉장히 의미 심장합니다. 안식일이 오지 않았다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고, 완성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을 제정하심으로 모든 창조의 완성이 안식일에 있음을 선포합니다.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왜 일곱째 날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일주일과 달, 그리고 년은 7이란 숫자와 함께 연관되어 이뤄집니다. 일곱은 완성의 숫자이자 하나님의 숫자입니다. 즉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해 완성되는 날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끝에 7일을 두심으로 안식하셨습니다.
안식은 개인의 종말과 역사의 종말에 연관되어 있습니다. 시작이 있으면 결국 끝이 있는 법이고, 그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쉼의 시간입니다.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하나님은 일곱째 날에 복을 주십니다. 사람을 창조할 때 복을 주셨고(1:28), 일곱째 날에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일곱째 날을 특별히 구별함으로 평일과 같지 않게 하셨고,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4-17절 에덴동산: 하나님 나라의 모형
에덴동산은 앞으로 전개될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땅
하나님의 창조가 마쳤지만 사람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창조의 끝과 완성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5절에서 ‘땅을 갈 사람이 없다’라고 하신 것은 사람이 와서 기존의 것들을 완성해 나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창조는 끝이 아니라 사람들이 경작하고 가꾸어야 하는 소명의 시작점입니다.
사람의 창조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십니다.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넣어 생령이 되게 하십니다. 사람의 완성은 잘 만들어진 흙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기입니다. 바울은 아담과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비교합니다.
고린도전서 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아담은 생령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살려주는 영입니다. 이 표현은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살려 주는 하나님이심을 말합니다. 하와는 아담의 갈비뼈를 통해 만들어집니다. 남자와 여자는 원래 한 몸이었고, 다시 한 몸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시 최초의 공동체이자 가장 근본적인 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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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장 여자의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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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 장
창세기 2장은 난제입니다. 1장에서 분명히 사람을 창조했다는 서술이 있는데 2장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그것도 1장과 다르게 말입니다. 2장은 3장에 나오는 타락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합니다. 2장에서는 아담과 하와의 소명 또는 ‘삶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보여주려는 의도입니다. 창세기는 출애굽의 관점에서 읽어야 합니다. 광야의 길을 걷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애굽에서 나와야 하고, 왜 이 고생을 하면서 광야를 지나 가나안에 들어가야 하는지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는 창조의 타락, 그리고 에덴동산에서의 추방,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떠돌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즉 집을 잃어버리고 배회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 이유가 오늘 2장에 소개됩니다. 하나님께서 피조한 피조물 중에 사람을 가장 존귀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가정을 이루게 함으로 참된 가족이 무엇이고, 참된 가족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3장은 공동체의 파괴를 통해 죄의 교활함과 악랄함을 폭로합니다. 자, 이제 창세기 2장의 내용으로 들어가 봅시다.
창세기 2장 구조
1-3절 안식일을 축복함
4-17절 에덴동산과 계명
18-25절 여자의 창조와 가정을 이룸
1) 1-3 절 안식일을 축복함
창세기 2: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창세기 2: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창세기 2: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2장은 천지 만물이 다 이루어졌음을 선언함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일곱째 날에 하시던 일을 마치셨고, 마지막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또한 안식일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복과 거룩이 하나로 연결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룩하다’라는 히브리어 ‘카다쉬’는 ‘구별된’ ‘헌신 된’ ‘특별한 목적을 위해 따로 구분된’이란 의미입니다.
안식일은 종말에 대한 암시이자 기억장치입니다. 매주 돌아오는 안식일을 지킴으로 우리에게 마지막이 있음을 알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함을 말합니다. 나머지 육일은 세속적인 삶이 아니라 안식일을 향하고 있고, 안식일 안에 있습니다. 이후의 사람들은 안식일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안식과 거룩에 동참하게 됩니다. 안식을 지킨다. 또는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후에 하나님께서 열방들을 완전히 정복하실 때 ‘안식’이란 단어를 사용하십니다.
“둘 다 하나님의 왕권과 관련이 있는데, 이 왕권을 통해서 우리는 안식과 대관식 사이에 상관관계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 마찬가지로, 성전, 왕좌, 창조, 이들은 모두 시편 93편 같은 곳에서 함께 등장하고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안식을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천국 또는 생명에 들어가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처음 안식은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지만 그것은 진정한 안식이 아닙니다. 또 다른 영원한 안식이 있는것입니다.
히 4: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하나님은 거룩하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은 거룩하며,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특별히 마지막 날을 기억하게 함으로 우리에게도 언젠가를 쉴 때, 숨을 거둘 때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직 타락도 안했는 종말을 이야기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지만, 광야를 걸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입니다.
2) 4-17 절 에덴동산과 계명
창세기 2: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창세기 2:5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창세기 2:6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세기 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창세기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세기 2: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창세기 2: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창세기 2:12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세기 2: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창세기 2: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창세기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창세기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창세기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제 두 번째 이야기로 들어가 봅시다. 4-17절까지는 사람의 창조와 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순서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3장의 타락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4-6절의 핵심은 5절의 ‘땅을 갈 사람이 없으므로’입니다. 15절에서 사람을 만드시고 그를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라고 말합니다. 즉 사람이 할 일은 에덴 동산을 잘 가꾸고 보존하는 일입니다. 두 동사를 기억합시다. 하나는 ‘경작하다’라는 뜻의 ‘아바드’라는 단어입니다. 이 말은 ‘일하다’ 또는 ‘섬기다’(to work, serve)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한 단어는 ‘지키다’라는 뜻의 ‘샤마르’입니다. 샤마르는 ‘순종하다’ ‘선을 넘지 않다’ ‘버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나의 계명을 지키면(샤마르), 나도 너희를 지키겠다.(샤마르)’고 말씀하십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계명에 어떤에 반응하느냐에 따라 복과 저주가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동일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이렇게 조언합니다.
고전 4: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교만이 무엇인가? 말씀 밖으로 넘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하지 말라’ 하셨음에도 그것을 넘어 자신의 원하는 것을 할 때 우리는 그것을 교만 또는 ‘타락’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소명을 사람에게 주신다음 곧바로 에덴 동산의 과실을 임의대로 먹도록 허락하시고, 오직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지 말라 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권세를 강조했다면, 2-3장에서는 말씀에 순종함이 생명이며, 참 소망인 것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선악과를 왜 주셨는가? 참으로 오래된 질문입니다. 초대교회 교부들도 이 문제에 깊이 고뇌했습니다. 결국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은사이자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오직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계명을 어길 수 있는 선택을 주었고, 사람의 자발적인 선택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사람을 창조했지, 명령에 복종만하는 기계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3) 18-25 절 여자의 창조와 가정을 이룸
창세기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창세기 2: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창세기 2: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세기 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세기 2: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창세기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세기 2: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세 번째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여인을 만드신 것입니다. 18절을 보면 하나님은 아담 혼자 있는 것을 보시고 안타까워하시며 ‘돕는 배필’을 만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계획을 하신 다음 곧바로 여자를 만들지 않고 아담이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19절 후반부를 보면,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라고 말합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아담이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곧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담은 존재하는 것에 이름을 부름으로 그 존재를 더 구체적으로 규명했습니다. 이름을 짓는 행위는 대상을 이해하고 통제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름은 곧 존재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자신들을 드러내십니다. 창세기 1장에 등장하는 하나님은 ‘엘로힘’이란 이름인데, 이 이름은 강력한 힘과 능력을 나타낼 때 사용합니다. 창세기 22장에서 ‘여호와 이레’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이 ‘이레’라는 단어는 원래 ‘보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보시고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아시고 ‘준비’하십니다. 여호와 라파는 치료하는 여호와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다음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해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갈빗대라는 단어는 ‘첼라~’인데 ‘곁’이란 뜻입니다. 이 단어는 정확하게 여자는 남자 곁에 있는 존재인 것을 의도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은 여자를 남자에게 나오게 했고, 함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담이 여자를 보았을 때 내 뱉은 말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라고 고백합니다. 성경에서 뼈는 그 사람의 본질, 육체적인 건강, 기운의 저장소를 뜻합니다. 그래서 ‘뼈가 꺽이다’는 뜻은 ‘심각한 질병이나 죽을병에 걸렸다’는 뜻이며, ‘뼈에 사무친다’라는 것은 ‘영혼 깊은 곳까지 통하는 기쁨이나 고통’을 말합니다. 뼈는 사람의 골격을 유지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힘과 권세를 상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란 표현은 ‘너는 나다’라는 뜻이며 동시에 ‘당신은 나의 힘이다’라는 뜻이 됩니다.
24~25절에서는 두 사람이 한 몸을 이루는 것과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로 마무리 됩니다. 두 사람은 두 사람이 아니라 한 몸이며, 이것은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는 이스라엘이 한 몸이며, 한 공동체인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그리스도의 몸이며, 한 몸입니다. 서로 공유하며, 서로 섬기며, 서로 사랑하며, 서로 존중하며, 서로 아낍니다. 주님께서 하나님께서 주신 두 계명을 말씀하실 때 하나는 힘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하나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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